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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만의 가족 나들이인지 모르겠어요. 감사합니다.”
햇살이 유난히 따사롭던 지난 15일, 서울 롯데월드 어드벤처 매표소 앞에 박성민 군(서울 대명초 2년)과 여동생 유나(7세), 아버지 박영식 씨(40세), 어머니 강현옥 씨(35세) 네 가족이 한껏 들뜬 표정으로 나타났다. 소년조선일보와 롯데월드가 진행한 이벤트에 사연이 뽑혀 나들이에 나선 것이다.
인사를 건네는 부모님 옆에서 성민이도 “안녕하세요” 하며 수줍게 고개를 숙였다. 성민이의 한쪽 귀를 감싼 조그만 장치에 눈길이 머물렀다. 어머니가 얼른 거들었다.
“‘인공와우’예요. 소리를 들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장치예요.”
성민이는 청각장애 1급 어린이다. 누구보다 건강하게 세상에 태어났지만, 생후 3개월에 고열을 앓으며 청력을 거의 잃었다. 돌을 지나며 보청기를 착용하기 시작했지만, 4살 때 다시 심한 중이염에 걸려 그나마 들리던 것도 전혀 듣지 못하게 됐다. 그해 인공와우 수술을 받았다.
“인공와우를 통해 듣는 소리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듣는 소리와는 달라요. 청력훈련과 언어치료 등 재활훈련이 필요했죠. 반복되는 병원생활과 재활훈련 속에 지칠 법도 한데, 성민이가 언어를 배우려는 의지가 강해 잘 따라와 주었어요. 완벽하진 못하지만 상대방의 입 모양을 보면서 대화를 하게 됐고, 작년에는 일반학교에도 입학할 수 있었어요. 학교생활도 누구보다 열심히 해요. 너무 힘든 시간이었는데, 이젠 이렇게 웃으며 이야기하네요.” 어머니의 눈가가 촉촉해졌다.
“엄마, 얼른 신나는 놀이기구 타러 가요.” 성민이가 엄마의 손을 잡아끌었다. -
봄맞이 ‘가면 페스티벌’이 한창인 놀이공원 곳곳은 색색깔 화려한 가면으로 축제 분위기가 가득했다. 놀이기구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성민이와 유나를 위해 먼저 ‘키드존’을 찾았다. 어린이들을 위한 안전한 놀이시설을 따로 마련한 곳이다. 빙글빙글 돌아가는 ‘매직붕붕카’, 통통 튕겨주는 ‘스윙팡팡’, 관람차 ‘해피피크닉’ 등을 즐기는 가족들의 얼굴에 봄꽃보다 화사한 웃음꽃이 피어올랐다.
놀이기구를 실컷 탄 뒤, 놀이공원 내 ‘자연생태체험관’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유난히 동물과 곤충을 좋아해 ‘동물 사육사’가 꿈인 성민이는 체험관에 들어서자마자 환호성을 질렀다. “와! 메기다! 엄마, 개구리랑 두꺼비, 나비도 있어요.”
성민이는 호랑나비 한 마리를 손등에 올려놓고 한참을 지켜보기도 했고, 축축하고 검은 흙 속에서 꼬물대는 장수풍뎅이 애벌레를 용감하게 집어들기도 했다.
어머니가 정성스레 싸온 점심 도시락을 먹으며 휴식을 취한 가족은, 서둘러 다음 이벤트가 있는 곳으로 자리를 옮겼다. 공연팀이 사용하는 분장실이었다. 여기서 성민이는 ‘피노키오’로, 유나는 ‘팅커벨’로 변신해 뮤지컬 쇼 ‘신비의 가면 동화나라’ 무대에 서기로 돼 있었다.
먼저 피노키오 옷으로 갈아입은 성민이가 양 볼을 빨갛게 분장했다. 다음은 유나 차례. 커다란 속눈썹도 붙이고, 예쁘게 화장도 했다. 하늘하늘한 팅커벨 날개도 달았다.
“엄마! 유나 예뻐?”
분장실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엄마·아빠 앞에 동화 속 주인공으로 멋지게 변신한 남매가 나타나자, 두 사람의 얼굴이 기쁨으로 확 붉어졌다. 엄마가 먼저 유나를 와락 끌어안았다. “사실 유나에게 가장 미안했어요. 성민이 병원 따라다니느라 유나를 잘 챙기지 못했거든요.
무대 뒤편에서 간단한 연습을 마친 남매는, 일일 배우로 무대에 올라 뮤지컬의 한 장면을 장식했다. 공연이 끝나고 배우들과 함께 무대 인사에 나선 성민이와 유나를 향해 객석의 부모님은 연방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무대 위에 섰을 때는 음악 소리가 울리면서 조금 크게 들려 얼떨떨했는데, 그래도 재미있었어요. 오늘 정말 즐거운 하루였어요. 학교 가서 친구들에게 자랑할 거예요.”
청각장애를 딛고 누구보다 밝고 똑똑하게 자라고 있는 성민이에게 세상은 두려움이 아니라 호기심으로 가득 찬 곳이었다. 바로 봄 햇살처럼 포근한 가족들의 사랑 때문이다.
"와! 오늘은 우리가 동화 속 주인공"
김시원 기자
blindletter@chosun.com
박성민 군 가족, 소년조선일보·롯데월드 초청 봄 나들이
청각장애 1급에도 일반학교 입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