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석조 선생님의 옛 그림 산책] 이암의‘모견도’
최석조 경기 안양 비산초등 교사
기사입력 2010.04.09 09:56
  • 이 작품 제목은 ‘모견도(母犬圖)’야. 초등학교 3학년 미술 교과서에도 나오는 그림이지. ‘모견’은 ‘어미 모’ 자에 ‘개 견’ 자를 써서 ‘어미 개’를 말해. 그러니까 이 그림 제목은 ‘어미 개를 그린 그림’이 되지. 이상하다. 강아지들도 함께 있는데 왜 그런 제목이 붙었을까?


  • 이암,‘ 모견도’, 종이에
채색, 73.2×42.4㎝, 국립중
앙박물관 / 이암,‘ 화조구자도’, 종이
에 채색, 86.0×44.9㎝, 호암
미술관
    ▲ 이암,‘ 모견도’, 종이에 채색, 73.2×42.4㎝, 국립중 앙박물관 / 이암,‘ 화조구자도’, 종이 에 채색, 86.0×44.9㎝, 호암 미술관
    ▶자식사랑 그린 ‘모견도’

    이 그림의 주제는 자식에 대한 어머니의 사랑이야. 귀여운 강아지들보다 어미 개의 따뜻한 정이 더 돋보이는 그림이지. 화가는 동물에게도 인간과 맞먹는 모성애가 있다는 걸 보여 주려고 했어.

    그림을 보면 아주 평화로운 느낌이 들어. 어미 개와 강아지의 생김새 때문이기도 해. 귀도 둥글, 머리도 둥글, 가슴도 둥글, 엉덩이도 둥글, 모든 게 둥글둥글하잖아. 모난 구석이라고는 전혀 없으니 뾰족한 마음이 어떻게 끼어들겠니.

    ‘모견도’를 그린 이암(1499~?)은 세종대왕의 넷째 아들인 임영대군의 증손자야. 그러니 왕족이지. 이암은 화원은 아니었지만 그림 솜씨가 뛰어났어. 임금의 초상인 ‘어진’까지 그릴 정도였으니까. 원래 어진은 나라에서 으뜸가는 화가들만 그릴 수 있거든.

    이암의 개 그림은 참 특이해. 실제로 있는 개가 아니라 마치 만화 주인공 같잖아. 그래서 더욱 귀여운 느낌이야. 이런 평화로운 그림을 그렸던 화가는 마음씨 또한 따뜻하고 넉넉했겠지.
     
    ▶강아지 가족의 행복한 표정

    나무 아래 강아지 가족들이 앉았어. 어미 개와 강아지 세 마리! 엄마는 자석인가 봐. 강아지들이 착 달라붙어 있네. 정말 평화로워 보이지 않니? 천국이 있다면 이런 모습일 거야.

    누렁이는 벌써 배가 불렀어. 엄마 등에서 쌔근쌔근 잠들었네. 두 눈을 감은 채 슬며시 웃고 있어. 좋은 꿈이라도 꾸는 걸까?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표정이야.

    오른쪽 아래 있는 흰둥이는 어떠니? 이 녀석은 욕심꾸러기 먹보야. 누워서 뻗대 가며 가장 좋은 자리를 차지했잖아. 입을 쫙 벌리고 정신없이 젖을 빨고 있어. 검둥이도 질세라 엄마 품을 막 파고드네. 어디를 다녀왔는지 느긋하게 와서는 젖을 물었어. 점잖은 모습이 맏이 아닐까? 이 녀석이 엄마를 가장 빼닮았네. 아마 성격도 비슷할 거야.

    어미 개 좀 봐. 길쭉한 주둥이가 얼마나 순해 보이는지 몰라. 흐뭇한 표정으로 새끼들을 바라보고 있어. 자기는 굶어도 자식들이 배부르면 행복한 게 부모 마음이거든. 자식 사랑하는 마음은 사람이나 동물이나 다를 바 없으니까.

    ▶왜 ‘빨간 목걸이’를 걸었을까?

    금방 눈에 확 띄는 물건이 있어. 찾았니? 그래, 검은색 사이에 화려한 빨간색! 어미 개 목에 두른 빨간 목걸이 좀 봐! 예쁜 방울까지 달렸어. 아무래도 특별한 물건 같은데.

    옛날 사람들은 빨간색이 귀신을 쫓아낸다고 생각했어. 동짓날 먹는 붉은 팥죽도 그런 의미였지. 게다가 빨간색은 따뜻해 보이는 색이라 어미 개의 자식 사랑을 더욱 돋보이게 해 줘. 혹시 이 개는 임금이 이암에게 선물한 하사품이 아닐까? 이암이 왕족인 데다가 어진까지 그렸잖아. 개를 유난히 좋아했다니 선물로는 그만이지.

    ▶그림 속에 숨은 뜻

    ‘모견도’와 ‘화조구자도’ 모두 개와 나무가 등장해. 이 속에는 숨은 뜻이 있대. 뭐냐고? 개는 한자로 ‘戌(개 술)’이라고도 써.‘戍(지킬 수)’ 자와 모양이 거의 같지. 나무는 한자로 ‘樹(나무 수)’라고 써. 이번에는 ‘지킬 수’ 자와 소리가 같지. 그러니까 개와 나무를 함께 그리면 ‘지키고 또 지킨다’는 뜻이 돼. ‘지킬 수’ 자가 두 번이나 들어갔으니까. 재산이나 건강처럼 소중한 것들을 잘 지켜 내라는 기원이 담겨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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