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석조 선생님의 옛 그림 산책] 강희안의 '고사관수도'
기사입력 2010.04.02 09:43

바위 아래 잔잔하게 흐르니…물결 바라보니 선비 마음 편안해지네
조선 초기 대표화가 강희안…그림처럼 낙천적 성품 지녀
이한철의 '의암관수도' 등 옛그림에 물놀이 장면 많아

  • 너희 컴퓨터 게임 좋아하지? 선생님 아들도 그래. 게임이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거든. 처음에는 얌전하지만 게임을 하다 보면 발도 구르고 소리도 막 질러. 어떨 때는 걱정이 돼. 사람이 너무 쉽게 흥분하면 좋지 않거든. 뭐 다른 놀이가 없을까? 흥분하지 않고 조용히 즐기는 놀이 말이야.

    선비가 바라보는 물

    이 그림 제목은 ‘고사관수도(高士觀水圖)’야. ‘인품이 높은 선비가 물을 바라본다’는 뜻이지. 뒤는 높은 절벽이야. 색깔도 아주 진해. 기다란 넝쿨이 바닥에 닿을 듯 위에서부터 쭉 늘어졌어. 왼쪽 아래는 작은 돌 몇 개와 성근 풀이 자랐지. 오른쪽에는 큼직한 바위가 놓였어. 물은 그 밑으로 잔잔히 흐르고 있지. 물결이 보일락 말락 하잖니.

    가운데는 커다란 너럭바위가 있어. 그 위에 한 선비가 엎드렸네. 두 손은 소매에 감추었지? 참 여유로워 보여. 옛 그림에서는 소매를 감추거나, 뒷짐을 지거나, 지팡이를 짚는 자세로 여유로운 분위기를 연출하거든.


  • 강희안, '고사관수도', 종이에 수묵, 23.5X15.7cm, 국립중앙박물관
    ▲ 강희안, '고사관수도', 종이에 수묵, 23.5X15.7cm, 국립중앙박물관
  • 이한철, '의암관수도', 종이에 담채, 26.8X33.2cm, 국립중앙박물관
    ▲ 이한철, '의암관수도', 종이에 담채, 26.8X33.2cm, 국립중앙박물관
    얼굴이 동글동글한 선비야. 다른 사람이 짜증을 부려도 넉넉하게 받아 줄 마음씨를 가졌을 거야. 보일 듯 말 듯한 웃음까지 짓고 있잖아.

    사실 선비가 물을 바라보는지는 확실하지 않아. 눈을 감았는지 떴는지도 잘 모르겠거든. 원래 눈이 작은 선비라고? 아니, 깜빡 졸면서 좋은 꿈을 꾸고 있는지도 몰라. 저렇게 슬며시 웃고 있으니까. 마음속에 떠오르는 생각은 다 지운 것 같아. 그저 물만 보면서 한없이 편안한 마음이 된 거지.

    어때, 그림을 보는 우리 역시 선비가 된 느낌이잖니? 보면 볼수록 마음이 편안해지는 작품이야. 눈앞에 축 늘어진 넝쿨이 보는 사람 마음을 더욱 누그러뜨리고 있어.

    숨기려 해도 숨길 수 없는 솜씨!

    누가 그렸느냐고? 강희안(1417~1464년)이라는 선비야. 선비들은 자기가 그림을 잘 그려도 그 사실을 쉬쉬했지. 그림은 신분이 낮은 화원들이나 그렸으니까. 강희안도 마찬가지였어. 그림 솜씨가 소문날까 봐 부끄러워했지. 하지만 그게 어디 맘대로 되니. 뛰어난 솜씨는 금세 드러나는 법이지. 강희안은 조선 초반에 안견과 더불어 가장 이름을 떨치던 화가야.

    ‘고사관수도’를 통해서 강희안의 성품을 짐작해 볼까? 맞아, 저 선비처럼 굉장히 낙천적이고 부드러운 성품이었대. 욕심을 부리면 불행해진다고 벼슬자리도 다투지 않았다니까. 그런 마음씨니 이런 그림이 나올 수밖에. 바위에 엎드려 슬며시 웃는 저 선비는 강희안 자신이 틀림없어.

    물과 가까이하다

    옛 그림에는 사람들이 물놀이를 하는 장면이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아. 이한철의 ‘의암관수도(倚巖觀水圖)’라는 그림을 보자. 제목은 ‘바위에 기대서 물을 바라보는 그림’이라는 뜻이야. ‘고사관수도’와 비슷한 분위기지? 다만 선비가 두 명 더 늘었고 아래쪽에 물살을 자세히 그렸다는 점이 달라. 참, 이 그림 속 선비는 눈도 동그랗게 떴어. 초롱초롱한 눈이 참 똑똑해 보여. 옛말에 물을 좋아하는 사람은 슬기롭다고 했는데 그 말이 딱 들어맞잖아. 잔잔하면서도 활기 넘치는 그림이야.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