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현배 작가의 서울 이야기] 갈현동 칡고개(하)
기사입력 2010.03.27 22:54

산삼밭을 망친 영감에 노한 산신령 "누구도 못 다니게 칡덩굴로 막을 테다"

  • 나무꾼은 집으로 돌아와 산삼을 어머니에게 달여 먹였습니다. 그러자 어머니의 병이 씻은 듯이 나았습니다. 어머니가 아들에게 물었습니다.

    “내가 건강한 몸으로 돌아오다니 믿어지지 않는구나. 내게 어떤 약을 먹였느냐?”

    “무를 달여 드렸습니다.”

    나무꾼은 어머니에게 잎을 보여 주었습니다. 그러자 어머니가 웃으며 말했습니다.

    “얘야, 이것은 무가 아니라 산삼이란다.”

    “예? 산삼이오?”


  • 삽화=양동석
    ▲ 삽화=양동석
    나무꾼은 깜짝 놀랐습니다. 고개 너머 숲에 있다는 무밭, 아니 산삼밭이 생각났습니다. 그래서 한걸음에 산삼밭으로 가 보았습니다.

    그러나 욕심꾸러기 영감이 모두 다 캐어가, 산삼은 한 뿌리도 남아 있지 않았습니다.
    영감은 산삼을 집에 쌓아 놓고 벙글벙글 웃고 있었습니다.

    “이 귀한 산삼을 한꺼번에 얻다니, 나는 확실히 복을 타고난 사람인가 봐.”

    영감은 산삼을 어디에 쓸 것인지 궁리해 보았습니다.

    “내가 다 먹어 버려? 한 200살까지 살게 말이야. 아니야, 아니야. 벼슬 한자리 못하면서 2000살까지 살면 뭐해. 차라리 산삼을 고을 원님에게 바쳐 벼슬이나 한자리 얻자.”
    영감은 산삼을 상자에 담아 가지고 원님을 찾아갔습니다. 그는 원님에게 산삼을 바치며 벼슬을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원님은 만족스러운 듯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귀한 산삼을 가져왔는데 내가 그 정도 부탁도 못 들어주겠느냐? 어서 상자를 열어 보아라. 어떻게 생긴 산삼인지 궁금하구나.”

    “예, 사또.”

    영감은 원님이 지켜보는 가운데 상자를 열었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상자 속에 들어 있는 것은 산삼 뿌리가 아니라 무뿌리였습니다. 무 썩는 냄새가 코를 찌르고 있었습니다.

    그뿐이 아니었습니다. 상자를 열자마자 하얀 연기가 새어 나와 원님은 연기에 눈이 멀어 버렸고, 영감은 몸의 절반이 마비되어 버렸습니다.

    산신령은 두 사람을 벌주고도 화가 풀리지 않았습니다.

    ‘고얀 놈. 산을 함부로 돌아다니며 산삼밭을 망쳐? 아무도 못 다니게 막아야겠다.’

    산신령은 산을 칡덩굴로 친친 감아 놓았습니다. 그리하여 사방팔방 우거진 칡덤불 때문에 그 누구도 함부로 다닐 수 없었습니다.

    그 뒤부터 사람들은 이 산에 있는 고개를 갈현(칡고개)이라고 부르게 되었답니다.


    매봉산·매봉… 매사냥을 즐겨 생긴 지명들

    우리나라에서는 매를 이용하여 오랜 옛날부터 사냥을 해 왔다. ‘삼국사기’에 백제 아신왕이 매사냥을 좋아했다는 기록이 나올 만큼 매사냥은 크게 성행했다.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는 매를 기르고 사냥을 하는 ‘응방’이라는 관청을 두었을 정도였다. 매가 사냥에 이용되는 것은 튼튼하고 빠른 데다가, 쉽게 길들일 수 있기 때문이다. 사냥을 하는 매는 ‘송골매’라 부르는데, 새끼를 길들여서 사냥에 사용하는 매는 ‘보라매’ 혹은 ‘해동청’이라 부른다.

    매사냥은 늦여름부터 겨울까지 하고, 하루에 보통 15마리의 꿩을 잡는다고 한다. 배부른 매는 사냥을 하지 않고 달아날 수 있기 때문에 먹이를 조금 주어 늘 허기지게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삼국시대 때부터 귀족들이 매사냥을 즐겨했다. 그래서 전국에는 ‘매봉산’, ‘매봉’, ‘응봉’ 등 ‘매’가 들어간 산 이름이 많이 있다. 서울에만 해도 은평구의 매봉산, 성동구의 응봉, 상암동의 매봉, 서초구의 매봉산 등 열 개나 된다. 그런데 ‘매’가 들어간 산 이름이 많이 있는 것은, 산을 뜻하는 말인 ‘뫼’에서 나왔다는 설도 있다.

    ‘뫼’는 ‘매’로도 읽히니, 산에 이름을 붙이기 시작하면서 ‘산’의 뜻이 둘이나 셋씩 겹쳐, 매봉·매봉산 따위의 산 이름이 생겨났다는 것이다.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