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석조 선생님의 옛 그림 산책] 조선의 마지막 선비 얼굴 ‘황현 초상’
최석조 경기 안양 비산초등 교사
기사입력 2010.03.26 09:57

"초상화란 모름지기 이 정도는 정교해야지"
수염 한올한올, 정말 사진 같은걸~

  • 사진이라고? 하하! 아니, 그림이야. 정말 사진 같지? 선생님도 깜빡 속았다니까. 자세히 들여다볼까? 선비들이 입는 유복을 입고, 머리에는 정자관을 쓰고 단정한 자세로 앉아 있어. 안경까지 써서 좀 색다른 모습이야. 과연 누굴까?


  • 채용신, ‘황현 초상’, 비단에 채색, 95.0X66.0cm, 전남 구례 매천사 / 채용신, ‘권기수 초상’, 비단에 채색, 84.6X55.6cm, 국립중앙박물관
    ▲ 채용신, ‘황현 초상’, 비단에 채색, 95.0X66.0cm, 전남 구례 매천사 / 채용신, ‘권기수 초상’, 비단에 채색, 84.6X55.6cm, 국립중앙박물관
    ● 대쪽같은 선비의 삶

    꼿꼿한 허리에 반듯한 옷차림. 어쩐지 함부로 대할 수 없는 기품이 느껴져. 가냘픈 몸매지만 다부져 보여. 군살이 하나도 없잖아. 눈매도 매섭기 그지없어. 자세히 보면 오른쪽 눈이 사팔눈이야. 검은 눈동자가 한곳으로 몰렸잖니. 우리를 흘끗 쳐다보는 듯한 눈길, 그래서 더욱 날카로운 느낌이야.

    이 그림은 보물 제1494호이기도 한 ‘황현 초상’이야. 황현(1855~1910년)은 조선시대 선비였어. 1910년, 나라를 일본에 빼앗기자 독약을 마시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지. 얼마나 분하고 부끄러웠으면 그랬을까 가슴이 짠해지지.

    ●디지털카메라보다 정밀하다

    황현은 이런 사람이야. 강하면서도 왠지 근심 어린 얼굴을 보면 그의 삶이 그대로 느껴져. 뭐, 듣고 보니 그런 것 같다고? 맞아. 사람은 자신의 얼굴을 책임져야 한다는 말도 있잖아. 황현이야말로 삶과 얼굴이 딱 맞아떨어지는 분이지.

    수염을 하나하나 죄다 그렸어. 더 놀라운 건 피부야. 살갗의 작은 주름을 칼날처럼 가는 붓으로 일일이 그렸어. 보통 번거로운 일이 아니지. 이 그림을 그린 화가만의 특기야. 제아무리 선명한 디지털카메라도 흉내 낼 수 없는 기법이지. 이런 기법을 ‘석지 필법’이라고 해. 화가의 호가 바로 ‘석지(石芝)’였거든.

    앉아 있는 돗자리 무늬 좀 봐. 조각하듯 하나하나 새겼잖아. 마치 사진처럼 선명해. 허리끈도 진짜처럼 자연스럽지 않니? 정성 들여 포장한 선물 상자 끈 같아. 오른손에 든 부채는 어때? 꽉 움켜잡은 손에서 강한 의지를 느낄 수 있어.

    이 초상은 황현이 죽은 지 1년 뒤에 그렸어. 황현을 직접 보고 그린 게 아니라는 얘기지. 그럼 생전에 황현을 만났던 화가가 기억을 더듬어 그렸겠다고? 하하, 그럴 수도 있겠지만 실제로는 황현의 사진을 보고 그렸대. 얼굴은 똑같이, 옷차림만 화가 나름대로 황현의 인품을 살려 새롭게 그렸지.

    ●최고의 인물화가 채용신

    이젠 화가를 밝혀야지? 아마 처음 들어볼 거야. 채용신(1850~1941년)이라는 화가거든. 채용신은 무과에 급제해서 20년 넘게 벼슬을 했어. 무과라면 군인이잖아. 뜻밖이지? 그림 실력도 매우 뛰어났나 봐. 임금의 초상인 어진도 세 번이나 그렸다니까.

    채용신은 조선시대 초상화의 전통을 충실히 이어받았어. 얼굴을 아주 정밀하게 묘사하는 기법이 채용신의 가장 큰 특기지. 거기에 명암 같은 서양화법도 사용했어. 그래서인지 채용신의 인물화는 유난히 돋보여. 여기 나온 그림들 외에도 80여 점이나 되는 많은 인물화를 남겼대.
    채용신은 특히 항일 애국자들을 많이 그렸어. ‘권기수 초상’을 봐. 권기수는 일본에 맞서 의병 활동을 벌인 분이야. 소탈하면서도 꼿꼿한 성품이 그대로 느껴지지.

    사회 교과서나 화폐를 보면 위인들의 영정이 많이 등장해. 그런데 놀랍게도 영정들 가운데 친일 화가들의 작품도 많아. 특히 일본에 맞서 싸웠던 조헌, 이순신, 유관순, 윤봉길의 영정조차도 친일 화가가 그렸대. 참 어이없는 일이지.

    만약 채용신이 오래 살았더라면 어땠을까? 틀림없이 이들을 그리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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