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석조 선생님의 옛 그림 산책] 김정희의 '부작란도'
최석조 경기 안양 비산초등 교사
기사입력 2010.03.19 09:55

그림이야, 서예작품이야?
마구 휘갈긴 것 같은데, 묘하게 어울려…
'추사체'로 유명한 김정희… 대충 그려 본 난이 걸작!
감격에 겨워 글까지 남기니… 많은 이들 앞다퉈 낙관 찍어

  • 김정희, '부작란도', 종이에 수묵, 55.0X30.6cm, 개인 소장
    ▲ 김정희, '부작란도', 종이에 수묵, 55.0X30.6cm, 개인 소장
    ●만능 재주꾼이었던 추사 '김정희'

    이건 추사 김정희(1786~1856년)의 작품이야. ‘추사체’란 글씨로 잘 알려진 분이잖아. 사실 김정희는 화가가 아니었어. 글공부를 많이 한 선비이자 예술 평론가였지. 김정희가 그린 건 바로 난초야. 사군자 가운데 하나로, 여름을 상징하는 식물이지. 은은하면서도 멀리 퍼지는 향기가 으뜸이야.

    그럼 난초부터 살펴보자. 오른쪽 아래에서 왼쪽 위로 선을 쭉 그었어. 아뿔싸! 저걸 어째. 짧은 잎들은 올라오다가 다 오른쪽으로 꺾였잖아. 겨우 두 잎만 끝까지 위로 올라왔어. 가장 긴 잎도 마찬가지야. 간신히 올라왔지만 결국 오른쪽으로 꺾였어. 그러니까 모든 잎이 오른쪽으로 휜 거야. 균형이 안 맞아 보이지?

    천만에, 이파리 하나가 왼쪽으로 휘었잖아. 바로 꽃이 핀 이파리야. 가운데 꽃술을 강조하려고 진한 먹으로 찍었어. 꽃잎 하나가 다른 여러 잎들을 압도하고 있어. 숫자로는 부족하지만 무게로는 당당한 균형을 이루었지.

    ●못난 난초… 어쩌다 그린 명작

    글씨는 왜 이리 많냐고? 난을 완성한 김정희가 너무 감격해서 막 써 놓았기 때문이야. 먼저 왼쪽 맨 위부터 읽어 볼게. ‘난초 그림을 끊은 지 20년 만에 우연히 붓을 들었는데, 그만 나 자신도 감탄할 멋진 난을 그렸다’고 써 있어. 한자로는 ‘부작란화이십년(不作蘭畵二十年)’이라고 시작해. 이 작품 제목이 ‘부작란도’거든. 바로 이 첫 문장에서 따왔지.

    이 제발(옛 그림에 쓴 글씨)은 위에서 난을 짓누르는 듯해. 글씨는 또 얼마나 날려 썼니. 그런데도 제법 잘 어울려. 그림의 선과 글씨의 획이 비슷하거든. 짚신도 제짝이 있다더니, 멋진 만남이야.

  • 낙관을 할 때 사용한 다양한 모양의 도장
    ▲ 낙관을 할 때 사용한 다양한 모양의 도장
    ●원래 주인은 종 ‘달준’

    이 그림을 대번에 알아본 사람이 있어. 김정희의 제자 오규일이야. 그림을 갖고 싶다고 계속 김정희를 졸랐나 봐. 하지만 김정희는 줄 수가 없었어. 원래 종에게 주려고 그렸던 그림이거든. 그런 사람에게 줄 그림을 애써 잘 그릴 필요가 있겠어? 아무런 부담 없이 그렸더니 웬걸! 이런 걸작이 탄생한 거야. 하지만 오규일은 얼마나 끈질겼는지 몰라. 결국 어떻게 되었냐고? 끝은 작은 글씨로 이렇게 맺었어. “오규일이 억지로 빼앗으니 정말 우습구나.”

    ●열다섯 개의 도장

    이 그림의 특징이 또 하나 있어. 세기 힘들 정도로 많은 도장이 찍혀 있잖아. 이렇게 그림에 작가가 글씨를 쓰고 도장을 찍는 일을 ‘낙관(落款)’이라고 해. 화가의 서명이라고나 할까. 물론 화가 말고도 그림을 보고 감상한 사람이 자기 느낌을 그 그림에 쓰고 도장을 찍기도 했어. ‘부작란도’에도 많은 사람들이 앞다투어 도장을 찍어 놓았어. 도장과 제발, 난초가 어우러져 더욱 멋진 작품을 만들어 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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