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석조 선생님의 옛그림 산책] 김홍도의 '기와이기'
최석조 경기 안양 비산초등 교사
기사입력 2010.03.12 09:42

"이봐 내가 기와를 던질 테니 잘 받으라고~"
일꾼들의 소리가 들리는 듯 생생하네

  • 이건 무슨 그림일까? 틀림없이 집을 짓고 있는데. 이 작품의 제목은 ‘기와이기’야. 김홍도의 풍속화를 모아 엮은 ‘단원풍속화첩’에 있지. 화면에 다 들어오지도 않을 정도로 큰 집을 짓고 있는 것 같은데…. 그림 속으로 한번 들어가 볼까?


  • 김홍도, ‘기와이기’, 종이에 담채, 27.0X22.7cm, 국립중앙박물관
    ▲ 김홍도, ‘기와이기’, 종이에 담채, 27.0X22.7cm, 국립중앙박물관
    ● 장척 든 노인은 공사 총책임자
    기와는 알겠는데 ‘이기’는 무슨 말이냐고? 기와나 짚으로 지붕을 덮는 일을 말해. 그러니까 이 그림은 옛날 집 짓는 모습을 고스란히 담고 있지. 먼저 오른쪽 위에 있는 노인부터 볼까? 집주인 같다고? 글쎄, 그렇게도 보이지만 아무래도 손에 든 지팡이가 좀 수상해. 지팡이로 보기에는 너무 길잖아.

    그래, 저건 지팡이가 아니라 ‘장척’이야. 장척은 나무 길이, 기둥 간격, 방 치수를 잴 때 쓰는 긴 자를 말하지. 그럼 저 노인은 누굴까? 공사를 맡은 총책임자인 ‘대목’이야. 지금 장척을 눈앞에 바짝 들이대고 뭔가 가늠하고 있어. 노인의 옷차림이 매우 위엄 있지 않니? 깐깐한 성격을 강조하려고 빈틈없는 옷차림으로 그렸어. 이런 사람이 감독하는데 일꾼들이 일을 허투루 할 리가 없지. 

  • 김홍도, ‘활쏘기’, 종이에 담채, 27.0X22.7cm, 국립중앙박물관
    ▲ 김홍도, ‘활쏘기’, 종이에 담채, 27.0X22.7cm, 국립중앙박물관
    ●'다림 보기’ 하는 목수
    기둥 바로 옆에 있는 한쪽 눈을 감은 사람, 참 재미있지? ‘활쏘기’라는 작품에서도 오른쪽 윗부분에 눈 감은 사람이 있어. 역시 김홍도의 솜씨지. 마치 만화의 한 장면처럼 재미있는 모습이야. 그래서 ‘단원풍속화첩’을 우리나라 만화의 시작으로 생각하는 사람도 있어.

    다시 ‘기와이기’를 보자. 기둥 옆에 있는 사람은 대체 무얼 하는 걸까? 두 손으로 실을 매우 조심스레 잡고 있어. 실 끝에 추를 매달아 밑으로 늘어뜨린 다음, 기둥이 똑바로 세워졌는지 실과 비교해 보는 거야. 이런 일을 ‘다림 보기’라고 해. ‘다림’은 수평이나 수직을 헤아려 보는 일을 뜻하지. 다림 보기는 일을 많이 해 본 목수만이 할 수 있었어.

    왼쪽에는 네 사람이 있어. 지붕 아래위로 각각 두 사람씩. 아래쪽에 타조 알처럼 둥글둥글한 게 보이니? 이건 홍두깨흙이야. 기와를 놓을 때 밑에 괴는 반죽한 흙이지. 그래야 기와가 딱 붙으니까. 그런데 흙 올리는 사람 좀 봐. 저런! 정신을 딴 데 팔았어. 대패질이 신기했나 봐. 저러다 줄에 딸려 올라가면 어쩌지? 열심히 일하는 사람 중에 이런 모습을 끼워 넣는 유머. 어때, 재치 만점이지? 너희 보기 딱 좋으라고 그려 놓은 것 같잖아.

    ●풍속까지 알 수 있는 그림
    그런데 그림에 이상한 점이 있어. 뒤쪽 기둥이 앞쪽보다 굵잖아. 원근법에 따르면 앞쪽 물건이 더 커야 하는데. 뒤쪽 기둥은 길이가 짧은데 굵기마저 가늘면 집이 어떻게 되겠니?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처럼 불안해 보이겠지. 보는 사람들 입장까지 생각하는 우리 옛 그림의 마음이야.

    옷차림도 참 재미있어. 오른쪽 세 사람은 목수패들로, 모두 깔끔한 차림을 했어. 반면에 왼쪽의 와공(기와를 굽고 이기도 하는 기술자)들은 거의 벌거숭이야. 사는 형편이 목수들보다 훨씬 낮았다고 볼 수 있지. 참 신기해. 그림을 보면 당시 생활 모습을 한눈에 알 수 있잖아. 그림 한 장이 두꺼운 역사책보다 낫다니까. 그래서 ‘단원풍속화첩’으로 역사를 연구하는 학자들도 많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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