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술/면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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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화로 보는 논술] 고려불화'수월관음도(水月觀音圖)'

조선일보 | 최혜원 블루로터스 아트디렉터·'미술 쟁점-그림으로 비춰보는 우리시대' 저자

2011.03.04 15:58

600년 만에 고국으로 돌아온 세계 최대 고려불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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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27일 인천국제공항, 특별한 작품 한 점이 고국 땅을 밟았다. 이 작품은 한국에 도착하자마자 온도와 습도, 진동으로 인한 작품의 손상을 막기 위해 특수 제작된 호송차를 타고 경상남도 양산시의 통도사로 옮겨졌다. 바로, 700년 전 우리 땅에서 제작된 높이 4m 20㎝, 폭 2m 55㎝의 현존하는 세계 최대(最大), 최고(最古)의 고려불화, '수월관음도(水月觀音圖)'였다.

일본 가가미신사(鏡神社)에 소장돼 있는 이 '수월관음도'는 소장처인 일본에서도 쉽게 공개되지 않는 매우 귀중한 작품이다. 사가현 현립박물관에서도 일년에 30여 일만 전시하고, 2003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개최된 '고려미술전시회'에 출품됐을 때도 20일간의 전시만 허용됐을 정도다. 그런데 올해 통도사 성보박물관 신관 개관 10주년 기념전시를 위해 40일간 일시 귀국한 것이다.

◆세계 최대, 최고의 고려불화 '수월관음도'

가가미신사 '수월관음도'는 1310년에 제작돼 현존하는 고려불화 중 최고 명작으로 손꼽힌다. 지난 2003년 샌프란시스코 전시회 당시에도 엄청난 반향을 일으켰다. 미국 뉴욕타임즈는 "It is the equivalent of the Mona Lisa(이 작품은 모나리자와 같은 가치를 지닌다)"고 극찬했다.

수월관음도는 '화엄경-입법계품'의 내용에 근거해 그려졌다. 대나무 숲과 바위산을 배경으로 걸터앉은 관음보살과 진실한 구도의 뜻을 품고 깨달음을 찾아 여행을 떠난 선재동자의 만남을 묘사하고 있다. 관음보살은 오른쪽 하단의 실제 아이 크기에 맞춰 그려진 선재동자에게 자애로운 눈길을 보내고 있다. 대부분의 '수월관음도'와는 반대로 화면 왼쪽에 관음보살을 배치한 특이한 구성을 하고 있다.

현재도 높이 4m 20㎝, 폭 2m 55㎝의 엄청난 크기지만, 수리과정에서 일부가 잘려나가 원형은 더 컸을 것으로 추정된다. 놀라운 사실은 이 그림이 비단 한 장에 그려졌다는 점이다. 대부분의 고려불화가 비단 한 장에 그려졌지만, 이와 같은 거폭의 비단을 만들어 낸 고려시대 직조기술은 한국을 비롯해 중국 및 일본 회화에서도 찾아볼 수가 없을 정도로 놀라운 것이다.

작품성 또한 뛰어나다. 은은하고 화려한 색채는 물론, 섬세하고 화려한 문양, 금니로 섬세하게 묘사한 투명한 베일과 장신구, 관음보살의 배경이 되는 수목과 바위의 표현, 정병과 물가, 산호 등의 경관표현까지 치밀한 묘사력과 독창적이고 세련된 회화 기법이 동원돼 가히 '고려회화의 정수'라 할 만하다.

◆'수월관음도'는 누가 만들었고 왜 일본에 있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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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월관음도(水月觀音圖)’, 비단에 채색, 화폭 420×255㎝, 고려시대, 1310년, 일본 중요문화재, 일본 가가 미신사(鏡神社) 소장, 현재 사가현(佐賀縣) 현립박물관 기탁보관 중

일본 가가미신사에 소장된 수월관음도가 우리에게 알려진 것은 30년이 채 되지 않는다. 1978년 일본에서 최초로 '고려불화전'이 열린 이후 지금까지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대부분의 고려불화는 국내에 없다. 현존하는 160여 점의 고려불화 중 우리나라에는 12점만이 있을 뿐이고, 120여 점은 일본이 소유권을 갖고 있다.

그 중 가가미신사 '수월관음도'는 1812년 작성된 이노 타다타카의 '측량일기'에 의하면, 1310년 5월 충선왕의 왕비였던 숙창원비 김씨가 발원해 김우문, 이계, 임순 등 8명의 궁정화가가 완성했다고 한다. 숙창원비 김씨는 빼어난 미모로 충렬왕과 충선왕 부자의 양대에 걸쳐 왕비를 지낸 독특한 이력을 지녔다.

정확한 제작 목적은 개인적인 발원, 또는 고려왕실의 안정을 위해서였는지는 알 수 없으나 당시 왕실 최고 권력자의 발원으로 최고의 기량을 가진 화가들에 의해 공동 제작된 사실을 알 수 있다. 또한 이 불화는 1391년 승려 료우켄이 지금의 가가미신사에 진상했다는 기록이 있어 제작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일본으로 건너갔음을 알 수 있다.

◆더 생각해볼 거리

지난 2004년에 국내 절도범들이 일본의 한 사찰에서 훔쳐 반입한 고려불화의 반환여부가 국내에선 물론 한·일간에 뜨거운 이슈가 된 적이 있다. 억울하기는 하지만 "문화재의 유출경로와 약탈문화재라는 증거를 확보하지 못한 채 일본 내에 있는 한국 문화재 모두를 훔쳐간 것이라고 단정하고 이와 같은 일이 계속 일어난다면 전시나 학술 연구가 불가능해져 결국에는 우리 문화재를 영원히 잃어버릴 수 있다"는 것이 학계의 우려다.

"원래 우리 것"이라는 감정적 대응으로만 일본에 문화재 반환을 요구하는 것은 빗나간 애국심이라는 의견과 함께 국외로 반출된 우리 문화재에 대해 생각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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