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화로 보는 논술] 공공미술에 녹아든 '문화 사대주의' 이대로 괜찮은가?
최혜원 블루로터스 아트디렉터·'미술 쟁점-그림으로 비춰보는 우리시대' 저자
기사입력 2009.09.10 02:50

클래스 올덴버그 '스프링'

  • 클래스 올덴버그,‘ 스프링(Spring)3, 스테인레스 스틸
ㆍ알루미늄ㆍ섬유강화플라스틱 등 혼합매체, 높이 20m,
2006, 서울 청계광장
    ▲ 클래스 올덴버그,‘ 스프링(Spring)3, 스테인레스 스틸 ㆍ알루미늄ㆍ섬유강화플라스틱 등 혼합매체, 높이 20m, 2006, 서울 청계광장
    지난주에 다룬 '에너지박스'편에 이어 '공공미술'에 대해 조금 더 생각해 보자. 도시 속 빌딩과 거리를 아름답게 꾸민다는 명분 아래 수많은 예술작품이 엄청난 비용을 들여 제작·구입된다.

    하지만 이 작품들이 초대받지 않은 손님처럼 환영을 받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여기서 예술의 공공성 문제가 발생한다.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보고 즐기지 못한다면 예술작품은 그저 예술가 개인의 만족을 위한 정신적 사치에 불과한 것이 아닌지 의구심이 든다. 반면, 예술가가 작품을 통해 세상과 소통할 때만이 진정한 예술이라고 할 수 있는지도 확신하기 어렵다.



  • 해외 유명작가의 이름만 빌려온 고가의 공공미술 논란

    최근 공공미술의 논란을 불러일으킨 작품이 있다면 서울 청계광장에 세워진 '스프링'이다. 미국 팝아트 작가인 클래스 올덴버그(Claes Oldenburg)의 작품으로 서울의 기념비적인 랜드마크로 세워졌다. 알록달록한 색깔에 위로 상승하는 나선형의 다슬기 모양으로 다이내믹하고 수직적인 느낌을 연출했다.

    이는 청계천의 샘솟는 물과 서울의 발전을 상징하며, 안쪽은 붉은색과 푸른색 알루미늄 리본이 휘날리는 구조를 하고 있다. 올덴버그는 "하늘로 솟아오르는 물과 샘의 원천, 흘러내리는 한복의 옷고름, 도자기에서 영감을 받았다"며 "스프링은 또 인간과 자연의 조화를 상징한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 작품은 계획안을 발표할 때부터 작가 선정과 제작비, 작품성 문제로 문화연대, 민족미술인협회, 한국미술협회 등 6개 미술단체의 반대에 부딪혔다. 급기야 올덴버그의 청계천 조형물 설치를 반대하는 항의 퍼포먼스까지 열렸다.

    결국 '청계천 복원과 문화예술의 공공성을 위한 연속 심포지엄'에서 공공예술의 기능에 대한 문제를 재고하기에 이르렀다. 논란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첫째, 공공미술의 환경조형물에 대한 몰이해를 지적했다. '왜 서울의 상징인 청계천의 첫머리 지점에 외국 작가가 만든, 그것도 인도양 조개 모양 작품을 설치해야 하는가?'하는 점이다.

    둘째, 올덴버그는 청계천을 상징하는 조형물제작을 의뢰받고도 단 한 차례도 청계천을 방문한 적이 없다. 올덴버그는 1966년 일주일 동안 서울을 방문했는데 그 당시 받았던 인상을 참고로 해 한복의 옷고름을 리본으로 형상화했다고 한다. 이 점은 미국 미니멀아트 작가인 프랭크 스텔라가 서울 포스코센터의 '아마벨'을 제작하면서 수차례 한국을 방문한 것과 비교가 된다.

    셋째, 우리 사회에 만연해 있는 문화사대주의 또는 명품병을 지적한다. '이런 작품을 위해 상식을 뛰어넘는 가격을 지불해야 하는가'하는 점이다. 올덴버그의 '스프링'은 과거 철거논란이 벌어졌던 '아마벨(17억 원)'보다 두 배가 비싼 34억 원짜리 작품이다.

    넷째, 우리 관료사회의 반복적인 밀실행정, 예술정책의 부재로 인한 일방통행 식 선정과정이 문제시 됐다. 올덴버그의 '스프링'은 그간 모습이 많이 변했을 서울을 작가가 단 한 차례도 방문하지 않은 채 최종 디자인이 완성됐다. 더구나 정작 작품의 실제적인 제작은 한국 모 대학교수의 공방이 맡았기에 올덴버그가 제공한 것은 단지 이름과 디자인뿐이었다. 이 정도의 노력에 대해 과도한 지불을 한 점은 계속해서 미술계의 비난을 받았다.

    공공미술의 성공과 실패는 종이 한 장 차이

    하지만 미술계의 우려와는 달리 일반인들은 '스프링'을 재미있어 하는 것 같다. 대중이 이해하기 쉬운 일상적인 이미지를 도입하고 주위에 널려 있는 일상적인 소재를 씀으로써 대중과의 소통을 가능케 한 작품이기 때문일 것이다. 또한 예술과 비예술의 경계를 허물고 있기 때문에 더 대중들에게 다가간 것으로 이해된다.

    청계천을 찾는 서울 시민은 물론 외국인 관광객까지 '스프링' 앞에서 즐거워하고 기념사진 찍기에 정신이 없다. 최근에는 '행운의 동전 던지기' 명소로 떠오르면서 밤이면 조명이 들어와 보름달처럼 빛나는 둥근 구멍 안으로 동전을 던지는 관람객의 모습도 쉽게 볼 수 있다.

    ※더 생각해볼 거리

    과거 예술이 아름다움, 고상함만을 추구했던 것에 반해 현대미술은 난해하고 아름답지 않은 실험적 작품 역시 예술로 인정하고 있다. '아마벨'과 '스프링'에 대한 일반인들의 서로 다른 태도를 보면서 난해하고 추한 것 역시 예술로 바라보는 포용성을 기대하기는 어려운 것인지에 대해 생각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