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화로 보는 논술] '라흐테프와 네페르트'
최혜원 블루 로터스 아트디렉터·'미술 쟁점-그림으로 비춰보는 우리시대' 저자
기사입력 2009.09.24 03:14

현실이 아닌 영혼의 세계를 바라보는 이집트 조각상

  • 이집트 고왕국, ‘라흐테프와 네페르트’, 석회암에 채색, 높이 각각 120㎝, 118㎝, 기원전 2610년경, 카이로 이집트 박물관 소장
    ▲ 이집트 고왕국, ‘라흐테프와 네페르트’, 석회암에 채색, 높이 각각 120㎝, 118㎝, 기원전 2610년경, 카이로 이집트 박물관 소장
    이집트 문명은 서양 문명의 모태인 고대 그리스·로마 문명에 영향을 미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되고 위대한 문명으로 손꼽힌다. 기원전 30세기 말에 발원, 3000년 이상 고유의 문화를 발전시키며 번성했다. 기원전 445~443년에 이집트를 여행하며 깊은 감명을 받은 그리스 역사가 헤로도토스(Herodotos)가 "이집트는 나일강의 선물이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아프리카 북동쪽에 자리한 건조한 사막과 나일강 유역의 비옥한 토지에서 시작된 이집트 문명은 다른 문명권과 구분되는 독특한 세계관을 형성했다. 태양신을 숭배하며 영혼의 불멸과 심판을 믿었고, 태양력, 천문학, 기하학, 수학, 의학, 건축, 예술, 측량술 등 거의 모든 분야에서 현재 우리 일상생활의 근간이 되는 학문을 이룩했다.

    기독교의 종교적인 원형도 아크나톤(Akhnaton, 재위 BC 1379∼BC 1362, 이집트 제18왕조의 제10대 왕)이 종교개혁을 통해 일으킨 태양을 상징하는 아톤을 신봉한 유일신 사상에서 찾을 수 있다. 우리가 현재 사용하고 있는 알파벳 체계 역시 이집트 상형문자에 기원을 두고 있다.

  • 절대권력 '파라오'의 표현, 이집트 미술양식의 법칙

    이집트 미술은 역사상 가장 완고하고 보수적인 미술로 알려져 있다. 이집트의 인물상은 항상 얼굴은 옆면, 눈은 정면, 가슴은 정면, 발은 옆면으로 조합돼 있다. 대상의 특징을 가장 명확하게 제시할 수 있는 방향에서 그려졌으며 그 규칙은 언제 어디서나 적용됐다. 비례도 언제나 동일했다. 전체 높이를 22.5로 나눠 무릎은 7선, 허리는 13선, 어깨는 19선을 맞춰 그렸다. 왜 이렇게 획일적이어야만 했을까?

    이는 이집트 미술의 제작목적에 맞춰 생겨난 법칙이다. 이집트 미술가들은 늘 동일한 규칙에 따라 '파라오(Pharaoh)'를 표현했다. 파라오의 절대 권력과 신성을 표현하기 위해서다. 이집트에서 살아있는 신, 신의 아들이자 대리인인 파라오는 절대적인 존재였다. 신과도 같은 왕을 중심으로 강력한 신권사회를 이루는 것이 고대국가의 특징인데, 파라오의 모습은 위엄 있는 풍채, 이상적으로 표현된 젊고 잘 생긴 얼굴, 굳은 듯 보이는 엷은 미소가 그 특징이다.

    고대 이집트 사람들은 절대적인 왕의 권력을 상징하는 형상들이 변화하는 것은 문제가 된다고 생각했다. 왕과 왕조의 권위가 절대적이고자 한다면 그들의 모습을 그린 미술도 변함없는 모습을 취해야 한다고 여겼다. 반면 일반인과 동물, 자연의 모습은 자유롭고 사실적으로 표현했다. 그들에게 위엄을 부여할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집트 미술의 법칙인 질서와 균형, 기하학적 규칙성은 3000년간이나 지속됐다.

    영원한 삶을 위한 예술, 죽은 자를 위한 예술

    고대 이집트인들은 육신이 죽어도 영혼은 불멸해 죽은 후에도 삶은 계속된다고 믿었다. 즉, 생명의 힘은 영원해 사람이 죽으면 영혼은 육신을 잠시 떠나지만 곧 되돌아온다고 생각했다. 죽은 다음의 세계, 내세에 대한 믿음을 간직하며 살았다.

    그래서 고대 이집트인들은 살아있는 동안 대부분의 시간을 죽음을 준비하는 데 썼다. 내세의 영원한 삶을 위해 오늘을 산 것이다. 현세에서 누린 부귀와 권세, 행복을 죽은 후에도 영원히 누리고 싶어 하는 간절한 소망을 담아 피라미드와 미라, 초상 조각을 만들고 무덤 안에 살았을 때의 생활을 벽화로 남겼다. 영원한 삶을 살기 위해 죽은 뒤 살 집을 만들고 육신을 보존하고자 했다.

    '라흐테프와 네페르트' 초상조각을 보자. 그림뿐 아니라 조각상의 경우도 현실세계보다는 저 먼 영혼의 세계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두 사람은 감정이 없는 듯 딱딱한 표정으로 엄숙한 자세를 취한 채 정면을 바라보고 있다. 이렇게 이집트의 초상조각이 판박이 같은 모습에 부자연스런 자세를 취하는 데는 까닭이 있다. 모델의 개성적인 모습이나 희로애락(喜怒哀樂)같은 순간적인 인간의 감정을 배제한 것이다.

    대신 변하지 않는 절대 권력의 소유자, 살아있는 신 파라오의 전형적 모습을 표현하는 것을 더 중요하게 생각했다. 이집트의 초상조각은 거의 대부분 무표정하고 두 팔은 몸통에 가깝게 붙인 자세를 취하고 있으며 눈은 앞쪽을 향하고 있다. 남자의 경우는 피부색을 어둡게 채색을 하고 있고 여자의 경우는 이와 반대로 밝은 피부색으로 표현했다. 이 왕자 부부는 지금 현실세계를 바라보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들의 시선은 영혼의 세계를 향하고 있다. 이집트인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영혼의 세계이기 때문이다.

    더 생각해볼 거리

    새로운 삶을 잉태하는 죽음, 죽음은 삶의 근원이라고 얘기하는 이집트인의 내세관을 통해 영원한 삶이란 무엇이고 불멸이란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