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석조 선생님의 옛그림 산책] 장승업 '고사세동도'
최석조 경기 안양 비산초등 교사
소년조선일보ㆍ시공주니어 공동기획
기사입력 2010.01.21 09:50

저런저런…고결한 나무에 침을 뱉고 가다니
"얘야, 구석구석 잘 닦거라"
출세ㆍ명예에 욕심없던 자유분방한 화가 '장승업'
본인이 동경한 세상 그려

  • 어, 저기 봐. 누가 나무를 오르고 있어. 너희 또래 같은데 맛있는 열매라도 따려는 걸까? 가만, 나무 아래 누가 앉았어. 멋진 수염에 깡마른 얼굴, 다리까지 꼬고 앉은 모습이 예사롭지 않아. 대체 무슨 사연일까? 아무래도 비밀을 푸는 열쇠는 저 남자가 쥔 것 같은데.

  • (좌)장승업, ‘고사세동도’, 비단에 담채, 142.2X40.3㎝, 호암미술관
 / (우)장승업, ‘원량애국도’, 종이에 담채, 128.8X31.7㎝, 개인 소장
    ▲ (좌)장승업, ‘고사세동도’, 비단에 담채, 142.2X40.3㎝, 호암미술관 / (우)장승업, ‘원량애국도’, 종이에 담채, 128.8X31.7㎝, 개인 소장
    ● 나무에는 왜 오르는 걸까
    다리를 꼬고 앉아 있는 사람은 예찬(1301~1374년)이야. 중국 원나라의 유명한 화가였지. 예찬은 평생 벼슬을 등지고 살았어. 대신 그림을 그리거나 시를 썼지. 한마디로 고상한 삶을 산 거야. 당연히 성격도 차분하고 부드러웠겠지.

    그런데 예찬에게는 별난 습관이 있었어. 지나치게 깔끔했지. 하루에도 몇 번씩 목욕을 했고, 옷도 수시로 갈아입었대. 집에 있는 물건도 하인들을 시켜 날마다 닦았지. 심지어 정원의 나무나 돌까지 닦을 정도였어. 하하, 이제야 그림이 대충 짐작 간다고?
    그래, 이 그림은 아이가 열매를 따는 장면이 아니야. 아이는 열심히 나무를 닦고 있지. 예찬의 집에 놀러 온 손님이 나무에 침을 뱉었거든. 예찬이 그냥 둘 리 있겠어? 손님이 돌아가자마자 어린 하인을 시켜 나무를 닦게 했지.

    ● 고상한 마음을 보여주려 그린 그림
    그림 제목은 ‘고사세동도(高士洗桐圖)’야. ‘높은 선비가 오동나무를 닦고 있는 그림’이라는 뜻이지. 나무줄기가 심하게 뒤틀렸어. 예찬의 독특한 성격과 맞추려고 이렇게 표현한 걸까?

    나뭇잎 좀 봐. 색깔이 어쩜 저렇게 싱그러울까. 예찬의 또 다른 마음을 상징하는 듯해. 무슨 뜻이냐고? 예찬의 지나친 결벽증 한쪽에는 고귀한 마음이 있었거든. 세상의 속된 일과 담쌓은 드높은 정신. 나중에는 전 재산을 다른 사람들에게 나눠주기까지 했대. 그 마음이 그림 속 나뭇잎처럼 싱그럽지 않니?

    예찬은 나무와 반대쪽에 앉았어. 침이라도 묻을까 봐 멀리 피해 앉은 듯해. 머리도 정갈하게 다듬었고, 입은 옷도 더없이 깔끔해 보여. 구석구석 예찬의 성격을 그대로 드러내지. 너무 유별나다고? 그렇게 삐딱하게 볼 필요는 없어. 이 그림은 예찬의 까다로운 성격을 보여 주려고 그린 건 아니거든. 오히려 그의 고상한 마음을 보여 주려고 그린 그림이지.

    ● 자유분방한 성격의 화가가 꿈꾸던 세상
    이 그림을 그린 화가는 장승업(1843~1897년)이야. 장승업은 무척 자유분방한 성격이었어. 출세나 명예 따위에는 관심이 없었어. 오죽했으면 그 좋다던 궁궐에서도 몇 번이나 도망쳤겠니. 예찬의 성격도 장승업과 비슷해. 세속적인 성공보다는 자신이 즐기는 일에 몰두했으니까. 그래서일까, 장승업은 이런 사람들 이야기를 그림으로 많이 남겼어.

    ‘원량애국도’라는 작품도 그래. 이 그림은 유명한 중국 시인 도연명(365~427년)이 국화를 감상하는 장면이야. 발아래 국화가 보이잖아. 도연명 역시 벼슬을 버리고 시골에 숨어 지낸 선비야. 특히 국화를 심어 놓고 아들처럼 아끼며 살았대. 틀림없이 장승업은 예찬과 도연명을 좋아했을 거야. 그러기에 저렇게 깔끔한 모습으로 그려 놓았지. 사실 이 세상은 장승업에게 잘 어울리지 않았어. 순수한 사람들이 살아가기에 세상은 너무 각박하잖아. 장승업은 자기가 꿈꾸던 세상을 예찬과 도연명의 삶에서 찾았는지도 몰라. 볼수록 기분이 산뜻해지는 작품들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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