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석조 선생님의 옛그림 산책] 김득신 '출문간월도'
최석조 경기 안양 비산초등 교사
소년조선일보·시공주니어 공동기획
기사입력 2010.01.07 09:54

"컹컹" 달보며 짖는 개… 졸린 눈 비비며 나온 아이
오호~ 금방이라도 움직일 것같네!

  • ‘한 마리 개가 짖고, 두 마리 개가 짖으니/ 온 동네 개가 다 짖네.// 아이를 시켜 문밖을 살피라 했더니/ 오동나무 꼭대기에 달이 걸렸다 하네.’

  • 김득신, ‘출문간월도’, 종이에 담채, 25.3X22.8cm, 개인 소장
    ▲ 김득신, ‘출문간월도’, 종이에 담채, 25.3X22.8cm, 개인 소장
    그림 왼쪽에 쓰여 있는 글이야. 글에 나온 대로 개 한 마리가 컹컹 짖고, 아이 하나는 대문을 열고 달을 쳐다보고 있어. 바로 출문간월도(出門看月圖·문을 나서 달을 보는그림)라는 그림이야.

    ●둥근 달 보고 짖는 개, 자연의 변화 순간 포착
  • 조석진, ‘달 보고 짖는 개’, 비단에 담채, 121.5X28.8cm, 개인 소장
    ▲ 조석진, ‘달 보고 짖는 개’, 비단에 담채, 121.5X28.8cm, 개인 소장
    누가 그린 그림일까? 바로 김득신(1754~1822년)이라는 화가야. 김득신은 순간을 잘 포착하는 화가로 유명하지. 등장인물들과 동물 모두 당장에라도 움직일 것 같잖아.

    집은 오른쪽에 보여. 지붕과 울타리는 나무로 대강 엮었어. 아마도 마을 구석, 사람 발길이 드문 숲 속에 자리 잡은 집이겠지.

    어, 대문이 살짝 열렸네. 심부름하는 아이가 나와 있어. 얼굴을 잘 보면 코가 뭉툭하지? 전형적인 조선 사람이야. 그러고 보니 개와 사람, 모두 조선을 대표하는 토종이야.

    아이의 시큰둥한 표정이 재미있어. 한참 자고 있었는데 주인이 깨웠나 봐. 동네 개가 다 짖으니 도둑이라도 온 줄 알았겠지, 뭐. 졸린 눈을 비비며 나온 아이는 대체 개가 왜 저리 짖는지 모르겠다는 표정이야. 아이는 무심코 고개를 들었어. 아, 달이 떴잖아. 쟁반같이 둥근 달! 옳지, 저거구나. 아이는 주인에게 대충 대답했지. “달 보고 짖는데요.” 그럼 주인은 뭐라고 대답했을까?

    “보름달이 떴다고? 참, 훤한 달이네. 개가 짖을 만도 하겠어.” 주인이나 하인 모두 평범한 자연의 변화에도 감탄하고 수긍하는 자세가 돋보여.

    달 주위는 온통 푸른색이야. 달빛은 원래 하얗지 않으냐고? 아니야. 여기는 숲 속이잖아. 푸른 숲에서는 달빛도 푸른색이지. 맑고 푸른 달의 기운이 고스란히 마당으로 쏟아져 내리고 있어.

    ●다른 개 소리를 듣고 덩달아 짖는 ‘재치’ 잘 표현

    그런데 이상해. 개가 정말 달을 보고 짖는 걸까? 실제로 보름달이 뜨면 개가 짖는 경우가 많대. 외국 영화를 보면 늑대가 보름달을 보며 울부짖는 장면이 나오잖아. 보름달에는 개나 늑대의 마음을 뒤흔드는 마력이 있나 봐 . 조석진(1853~1920년)의 ‘달 보고 짖는 개’에서도 개가 달을 보고 짖어. 하지만 ‘출문간월도’의 개는 아니야. 달을 쳐다보고 있지 않거든. 그래, 녀석은 다른 개의 소리를 듣고 덩달아 짖을 뿐이지. 여기서 김득신의 대단한 재치를 엿볼 수 있어. 처음에는 보는 사람의 관심을 개 짖는 소리로 쭉 끌어모았다가, 순식간에 보름달로 바꿔치기했잖아. 귀가 눈으로 변했어. 보는 사람의 감각을 이리저리 맘대로 끌고 가는 솜씨, 과연 김득신이야.

    ●그림 주인공은 얼굴 없는 ‘집주인’

    그럼 ‘출문간월도’의 주인공은 누굴까? 개, 아니면 아이? 둘 다 틀렸어.

    집주인이 주인공이야. 시를 다시 한 번 읽어 보렴. 주인의 입장에서 그린 그림이란 걸 알 수 있어. 그러니까 얼굴없는 주인공인 셈이야. 아주 감칠맛이나. 집주인이 그림에 출연했다고 생각해 봐. 그저 그런 밋밋한 분위기였겠지. 주인공이 숨어 있으니 더 긴 여운이 느껴지지 않니?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