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술을 돕는 이 한권의 책] 세계 과학자들에게 인류 최고 발명품을 묻다
허병두 숭문고 교사·책으로 따뜻한 세상 만드는 교사들 대표
기사입력 2010.02.25 03:09

지난 2천 년 동안의 위대한 발명 - 존 브록만 엮음|해냄

  • '에지'(EDGE, www.edge.org)는 최고의 지적 웹사이트 포럼이다. 전 세계의 뛰어난 과학자와 기술 전문가들이 모여 대화를 나누며 자신의 생각을 대중에게 전달하는 '온라인 살롱'이다. 진화생물학자 리처드 도킨스(Richard Dawkins), 철학자 다니엘 데넷(Daniel C. Dennett), 생리학자 자레드 다이아몬드(Jared Diamond), 컴퓨터 과학자 마빈 민스키(Mavin Minsky), 심리학자 스티븐 핑커(Steven Pinker) 등 쟁쟁한 학자들이 이곳에서 활동하고 있다.

    '에지'를 처음 만든 사람은 세계적인 출판인으로 꼽히는 존 브록만. 그는 1998년 12월 '에지'의 지식인들에게 이메일로 질문을 던졌다. "지난 2000년 동안 인류의 가장 중요한 발명은 무엇인가? 왜 그렇게 생각하는가?" 그리고 이에 대한 답변을 정리해 '지난 2천 년 동안의 위대한 발명'이라는 책으로 묶었다.

  • 이들이 꼽은 인류 최고의 발명은 '인쇄기계'다. 인쇄기술과 제지기술이라는 답변도 지식의 생산과 공유를 획기적으로 변모시켰다는 점에서 같은 맥락에 속한다. 또한 컴퓨터와 컴퓨터 네트워크, 인터넷, 디지털 비트, 디지털 생태계 등 정보 문명의 기반도 높은 평가를 받았다.

    여기에 전기와 전기 발생 장치, 전기 모터, 전지, 전등 등을 비롯해 미적분과 수학, 숫자 계산, 숫자 체계 등이 비슷하게 손꼽혔다. 이는 지난 2000년 동안 인류의 문명을 크게 변화시킨 요소가 무엇인지, 다시 말해 농업혁명부터 산업혁명, 정보혁명 등 인류 문명의 굵직한 지각변동이 어떻게 이뤄졌는지 깨닫게 해 준다.

    아울러 어느 발명품도 응답자로부터 10% 이상의 동의를 받지 못했다는 점은 지난 2000년 동안 인류가 얼마나 다양한 노력과 성취로 지금의 문명에 이르렀는지를 잘 보여준다.

    세계적 지성들이 제시한 인류 최고의 발명들은 다양하면서도 흥미롭다. 또한 왜 이들을 위대한 발명이라고 생각하는지 근거를 읽는 재미도 쏠쏠하다. 더글러스 러쉬코프(Douglas Rushkoff)는 인류 최고의 발명품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한다.

    "답은 지우개다. 컴퓨터의 'Del'키, 화이트(수정액), 헌법 수정 조항, 그밖에 인간의 실수를 수정하는 모든 것을 꼽고 싶다. 이렇게 뒤로 돌아가서 지우고 다시 시작할 수 없었다면 과학적 모델도 없었을 것이고 정부, 문화, 도덕도 없었을 것이다. 지우개는 우리의 참회소이자, 용서하는 자며, 타임머신이기도 하다." (47쪽)

    '우리는 어떻게 생각하는가'에 속한 대부분의 답변은 고급 수준 지문의 핵심어와 중요 표현, 생각해 볼만한 주제 등과 직결된다. 이를테면 초자연적인 것에 대한 불신, 민주주의와 사회 정의, 우주에서 인간의 위치에 대한 깨달음, 정보가 지배하는 경제 등 차례만 읽어도 지적 호기심을 유발한다. 이 책은 첫 장부터 자레드 다이아몬드가 쓴 맺음말까지 책장마다 생각할 거리를 무수히 쏟아낸다.

  • "필요는 발명의 어머니라는 얘기도 발명가의 잘못된 이미지에 일조한다. 사실 발명은 필요의 어머니이다. 과거에는 생각하지도 않던 필요를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솔직하게 말해보자. 워크맨, CD플레이어가 나오기 전부터 이것을 필요로 하던 사람이 있었는가?

    (중략) 구텐베르크에게 인쇄술로 책을 많이 찍어내라고 부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중략) 천재 발명가가 사회적 필요에 부응하기 위해 혼자 힘으로 문제를 해결하고 세상을 바꿨다는 신화 따위는 잊어버리자. 그런 천재는 존재한 적이 없다. 단지 진보에 조금씩 기여한 사람들의 창조성이 긴 끈을 이루고 있을 뿐이다." (269~270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