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겹게 번 돈, 아낌없이 썼다
김시원 기자 blindletter@chosun.com
기사입력 2010.01.29 09:46

'고액기부자 클럽' 회원들 한자리에

  • ‘사방 백리 안에 굶어 죽는 사람이 없게 하라.’

    조선시대 300년 동안 10대에 걸쳐 만석꾼의 부를 지킨 ‘경주 최부잣집’ 사람들이 따랐던 가훈이다. 가훈에 따라 최부잣집은 흉년이 들면 곳간을 활짝 열어 배고픈 이웃을 구했다.

  • 고액 기부자 클럽 ‘아너 소사이어티’의 첫 모임에 참석한 회원들이 커다란 ‘사랑의 열매’ 앞에서 나눔의 실천을 다짐하고 있다. / 한준호 기자gokorea21@chosun.com
    ▲ 고액 기부자 클럽 ‘아너 소사이어티’의 첫 모임에 참석한 회원들이 커다란 ‘사랑의 열매’ 앞에서 나눔의 실천을 다짐하고 있다. / 한준호 기자gokorea21@chosun.com
    28일 ‘한국형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하고 있는 현대판 최부자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서울 사랑의열매 회관 지하 1층 대강당에서 열린 이번 모임은 사회복지공동모금회 고액 기부자 모임인 ‘아너 소사이어티’ 회원들의 첫 번째 모임으로, 회원 22명 중 13명이 참가했다.

    신체장애와 가난을 딛고 어렵게 모은 돈을 이웃을 위해 아낌없이 내놓은 이들의 ‘고귀한 나눔’에 관한 미담을 소개한다. 

  • ▲남한봉(유닉스코리아 대표·69세)
    남한봉 대표는 이날 모임에 휠체어를 타고 나타났다. 그는 1963년 군복무 중 타고 가던 트럭이 50m 절벽 아래로 구르는 사고를 당했다. 기적처럼 살아났지만 하반신이 마비됐다.

    하지만 장애가 삶에 대한 그의 의지를 꺾지 못했다. 휠체어에 의지해 살면서도 그는 누구보다 열심히 일했다. 덕분에 1979년 시작한 사업은 날로 번창했다. 상황이 좋아지면서 그는 주변을 둘러보게 됐다. 남 대표는 “사고 후에도 이렇게 잘살 수 있었던 건 주변의 도움 때문”이라며 “이제 갚아야 할 때가 된 것 같아 기부를 결심하게 됐다”고 말했다.

    일 년에 양복 두 벌, 이면지가 가득한 사장실 책상, 수차례 수선해 신은 앞 코가 다 해진 구두. 돈벌이의 어려움을 알기에 평생을 검소하게 살아온 그는 2008년 1억 원을 기부하며 아너 소사이어티의 첫 번째 기부자가 됐다.  

  • ▲류시문(한맥도시개발 회장·62세)
    류시문 회장은 예닐곱 살 무렵 왼쪽 다리를 크게 다쳤다. 시골 의원에서 수술했지만 다리가 썩기 시작했고, 결국 철심을 박은 채 평생 장애를 안고 살게 됐다. 게다가 치료를 받던 3년간 영양실조와 결핵을 앓았고, 양쪽 고막이 손상돼 청각장애까지 얻었다.

    장애를 두 가지나 가진 아들에게 부모님은 농사를 지으라고 말했지만 류 회장은 부모님을 설득해 학교에 다녔다. 하지만 귀가 들리지 않아 늘 친구의 노트를 빌려 공부해야 했다. 이를 지켜본 한 교수 부부의 도움으로 류 회장은 대학을 졸업했고, 기업가로 성공할 수 있었다.

    류 회장은 “그분들의 가르침을 따라 평생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일하기로 결심했다”고 말했다. 그는 아너 소사이어티에 2억 원을 기부했고 이외에도 수많은 학교와 단체를 지원하고 있다.       

  • ▲우재혁(경북타일 대표·67세)
    우재혁 대표는 경북 안동의 한 가난한 농가에서 태어났다. 초등학교는 겨우 졸업했지만, 한 자라도 더 배워보고 싶어 대구로 나가 중학교에 들어갔다. 껌팔이·신문배달·넝마주이 등 돈 되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했다. 하지만 결국 버티지 못하고 중학교를 중퇴했다.

    1978년 군 제대와 함께 울산에서 타일업체 심부름꾼으로 일하기 시작했다. 밑바닥에서 시작해 타일 도·소매 업체의 사장이 된 그는 2003년부터 설·추석 명절 때마다 1000만 원 이상을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기부하고 있다.
    이날 모임에서 우 대표는 “우리나라가 도움을 받는 나라에서 도움을 주는 나라가 된 것처럼, 나도 도움을 받는 사람이었지만 이젠 어려운 사람들에게 나눠주고 싶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