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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현배 작가의 서울 이야기] 점쟁이 홍계관과 아차산성

소년조선

2010.01.17 00:04

"아차! 홍계관을 구하기엔 이미 늦었구나"

조선 시대 명종 임금 때 서울에는 홍계관이란 이름난 점쟁이가 살았습니다.

어느 날, 홍계관은 자신의 운수를 점쳐 보았습니다. 그랬더니 모년 모월 모일에 죽는다는 점괘가 나왔습니다. 살아날 방법이 없나 찾아보니, 임금의 의자 밑에 숨으면 살 수 있다는 점괘가 나왔습니다. 홍계관은 곧장 임금을 찾아갔습니다. 그래서 임금의 승낙을 얻어, 임금이 앉는 의자 밑에 숨어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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삽화=양동석

임금은 홍계관이 점쟁이이긴 하지만 얼마나 용한지 궁금했습니다. 때마침 쥐 한 마리가 마당을 지나가자, 홍계관에게 물었습니다.

“방금 쥐가 지나갔는데 모두 몇 마리인지 알아맞혀 보아라.”
“세 마리입니다.”
“뭐라고?”

임금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짓더니 버럭 소리를 질렀습니다.

“용한 점쟁이인 줄 알았더니 순 사기꾼이로구나! 세상 사람들을 속여 세상을 어지럽히는 놈이야. 여봐라, 저놈을 형장에 끌고 가 목을 쳐라!”

홍계관은 형리에게 넘겨져 형장으로 끌려갔습니다. 그는 형장에서 자신의 운수를 점쳐 보았습니다. 그랬더니 한 시간만 잘 버티면 목숨을 건진다는 점괘가 나왔습니다. 이에 홍계관은 형리에게 형 집행을 한 시간만 늦춰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럽시다.”
형리는 홍계관의 부탁을 선선히 들어주었습니다.
한편, 임금은 홍계관을 형장으로 보내 놓고 생각에 잠겼습니다.

‘홍계관은 왜 쥐가 한 마리 지나갔는데 세 마리가 지나갔다고 했을까? 혹시 그 쥐는 새끼를 밴 쥐가 아닐까?’

임금은 신하를 불러 쥐를 잡아오게 한 뒤 그 배를 갈랐습니다. 그러자 뱃속에는 새끼 쥐 두 마리가 있었습니다.

‘이크, 내가 큰 실수를 했구나.’

임금은 다급한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빨리 형장으로 가서 형 집행을 중지시켜라.”

신하는 임금의 명을 받고 형장을 향해 급히 말을 달렸습니다. 그는 저만치 형장이 보이자, 형장에 있는 형리를 향해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형 집행을 중지하라!”
형리는 말을 급히 몰고 오는 신하를 보았습니다. 하지만 거리가 멀어 그가 외치는 소리가 들리지 않았습니다. 신하는 형 집행을 중지하라고 손을 저었습니다.

‘빨리 처형하라고 재촉하는구나.’

이렇게 판단한 형리는 얼른 홍계관의 목을 베어 버렸습니다.
신하가 돌아와 처형 소식을 전하자, 임금은 이렇게 탄식했습니다.

“아차! 이미 늦었구나!”

이런 일이 있고부터 형장인 광나루 응화대를 끼고 있는 산을 아차산이라 불렀다고 한다.
 

한강 점령 위해 싸운 삼국 '아차산성'서 끊임없이 전쟁

아차산은 서울시 광진구 광장동과 구의동, 그리고 경기도 구리시 아천동 경계에 있는 산이다. 해발 286.8m로 한강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다.

이 산에는 봉우리에서 시작해 남동으로 한강을 향해 산허리에 쌓은 성이 있는데, 이 성이 바로 사적 제234호로 지정된 아차산성이다. 돌로 쌓은 성벽은 전체 길이가1125m이며, 성벽의 높이는 안쪽에서는 1~2m이지만 밖에서 보면 평균 10m쯤 된다.

아차산성은 고구려・백제・신라가 서로 맞서던 삼국 시대에 한성(경기도 광주)에 도읍을 정한 백제가 고구려의 침략에 대비해 쌓은 성이라고 한다. 이때는 그 이름이 ‘아단성’이었는데, 조선 시대에 이 산이 ‘아차산’이 되면서 ‘아차산성’이라 불리게 되었다.

아차산성은 삼국 시대에 최대 격전지였다. 475년 고구려군이 백제의 수도 한성을 점령했을 때, 백제의 개로왕은 고구려군에게 붙잡혀 이 성 밑에서 죽임을 당했다.

그 뒤 이 산성은 고구려의 영토였다가 신라에 넘어갔는데, 고구려 영양왕 때 평원왕의 사위 온달 장군이 한강 이북의 땅을 되찾으려고 신라군과 싸우다가 아차산성에서 장렬하게 전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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