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석조 선생님의 옛그림 산책] 윤두서의 ‘자화상’
최석조 경기 안양 비산초등 교사
소년조선일보·시공주니어 공동기획
기사입력 2009.12.18 09:50

"털 한 올이라도 다르면 초상화가 아니지~"
왜 귀 없는 얼굴만 있냐고?
세월이 흘러 지워진 거래~ 그러니 너무 무서워하지 마

  • 윤두서, '‘윤두서 자화상’, 종이에 담채, 38.5×20.5㎝, 개인 소장(해남윤씨 종가).
    ▲ 윤두서, '‘윤두서 자화상’, 종이에 담채, 38.5×20.5㎝, 개인 소장(해남윤씨 종가).
    무서운 그림 하나 볼까? 목과 몸뚱이는 없고 머리만 있어. 용감한 장군일까, 악명 높은 죄인일까? 괜히 무서울 리가 없잖아! 바로 이 그림이야. 으, 역시 무섭다고? 당연하지. 아무리 사람이지만 목만 공중에 붕 떠 있잖아. 더구나 귀도 안 보이고, 모자도 반쯤은 잘려나갔어. 제대로 잘 좀 그렸으면. 대체 왜 저렇게 그렸을까?

    ●가장 인상적인 곳은 강렬한 눈빛

    이 그림은 조선시대 선비였던 윤두서(1668~1715년)의 작품이야. 윤두서는 25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진사가 되었지만 일찍 벼슬 자리를 떠났어. 셋째 형이 당쟁에 휘말려 귀양지에서 세상을 떠났고, 절친한 친구마저 상소를 잘못 올렸다가 목숨을 잃었거든. 윤두서는 벼슬할 뜻을 접고 고향에서 그림을 그리며 마음을 달랬지. 그럼 이 그림의 주인공은 누굴까? 바로 윤두서야. 그렇다면 자기 자신을 그렸다는 말이네. 맞아. 이 그림은 바로 ‘자화상’이야.

    그림에서 가장 인상적인 곳은 어디일까? 맞아, 저 사람의 눈동자! 오래 바라볼 수가 없어. 쏘아보는 듯한 강렬한 눈빛 때문이야. 나도 모르게 괜히 “잘못했습니다”하고 말할 것 같잖아.

    눈빛이 더욱 강하게 느껴지는 까닭은 또 있어. 초상화는 대부분 고개를 조금 틀고 약간 비스듬하게 있는 모습을 그리잖아. 그런데 이 그림 속 인물은 앞을 똑바로 바라보고 있어. 진짜로 사람을 쳐다보는 것 같아서 늘 우리가 먼저 고개를 돌려 버리지. 그만큼 실감 나게 묘사했어.

    윤두서는 털보였나 봐. 수염이 온 얼굴을 뒤덮었어. 특히 귀밑의 구레나룻은 정말 매력적이야. 수염을 자세히 들여다봐. 섬세하고 부드러워서 바람이라도 불면 금방 날릴 듯해. 더 놀라운 점이 있는데, 뭐냐고? 글쎄 이 많은 털을 가는 붓으로 한 올 한 올 직접 그렸지 뭐야. 보통 정성이 아니지. 털 한 올이라도 똑같이 그리는 마음! 우리 초상화의 가장 중요한 특징이야.

  • ‘윤두서 자화상’을 적외선으로 투시한 사진. 귀와 몸을 그린 부분은 세월이 흐르면서 지워졌다.
    ▲ ‘윤두서 자화상’을 적외선으로 투시한 사진. 귀와 몸을 그린 부분은 세월이 흐르면서 지워졌다.
    ●몸뚱이가 사라진 까닭은?

    ‘윤두서 자화상’은 몸뚱이만 없는 게 아니야. 잘 살펴보렴. 귀도 없잖아. 이것 때문에 미완성 작품이라고 알려졌었는데, 최근에 와서 진실이 밝혀졌어. 현미경으로 얼굴 부분을 확대해 보니 양쪽 귀 자국이 선명한 거야. 세월이 지나면서 지워졌던 거지, 뭐. 미완성 작품이 아니라는 얘기야.

    사실 몸뚱이도 없는 게 아니야. 목탄으로 몸을 그렸는데 역시 오랜 세월이 지나면서 지워졌던 거지. 지금도 적외선으로 투시하면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는 옷깃과 옷 주름을 선명하게 볼 수 있어. 그러니까 더 이상 무서워하지 마.

    ●외유내강의 선비 모습 그려

    실제로 윤두서는 아주 너그러운 성격이었대. 헐벗은 사람을 보면 새 옷을 벗어 주기도 했고, 종들에게도 ‘이놈, 저놈’ 하고 함부로 부르지 않았으니까. 빚진 사람에게 받은 차용증서까지 그냥 태워 버리기도 했다니 굉장히 따뜻한 사람이었지. 너그러운 성격을 말해 주는 모습이 얼굴 어딘가에 나타나 있을 거야. 글쎄, 어디일까? 그래, 얼굴 모양과 입술이야. 얼굴은 통통하고 입술은 도톰해서 아주 부드럽게 보이잖아. 바로 여기에 넉넉한 마음이 실려 있지.

    강렬한 눈빛 때문에 무서운 느낌을 주기도 하지만, 실제로는 한없이 너그러웠던 윤두서의 마음. 자신을 그린 이 자화상에 윤두서의 모든 것이 그대로 담겨 있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