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석조 선생님의 옛그림 산책] '까치호랑이'
최석조 경기 안양 비산초등 교사
소년조선일보ㆍ시공주니어 공동기획
기사입력 2009.11.27 09:59

발톱 감춘 호랑이…친근한 까치…
백성들이 즐긴 '수호천사'

  • 귀여운 호랑이 한 마리 만나 볼래? 얼마나 웃기게 생겼는지, 배꼽이 빠질지도 몰라. 못 믿겠다고? 잘 봐. 가슴은 불룩 튀어나왔지, 발가락에는 두툼한 장갑을 꼈어. 저래 가지고 토끼 한 마리 제대로 잡을 수 있겠니? 귀도 너무 납작해. 사나운 척하려고 으르렁대지만 완전히 풀이 죽었어. 정말 숲 속의 왕 맞아?

  • 작가 미상, ‘까치호랑이’, 종이에 채색, 92.0 X 70.0cm, 개인 소장
    ▲ 작가 미상, ‘까치호랑이’, 종이에 채색, 92.0 X 70.0cm, 개인 소장
    ● ‘표랑이’를 소개합니다
    더 웃긴 건 무늬야. 몸통에 호랑이 줄무늬가 있는데, 얼굴과 꼬리는 표범처럼 점박이잖아. 참 어색해. 하기야 실제로도 이런 동물이 있지. 호랑이와 사자가 짝짓기를 해서 낳은 새끼 말이야. 영어로는 ‘라이거’나 ‘타이온’이라 부르잖아. 그럼 이 호랑이는 ‘표랑이’라고 불러야겠네! 표범과 호랑이를 섞어 놓았잖아. 아무튼 괴상한 모습이야. 무섭게 보이려고 뾰족 수염에 날카로운 이빨까지 그렸는데 하나도 무섭지 않으니 어쩌면 좋지?

    ● 서낭신의 심부름꾼
    호랑이 말고 까치도 있네. 그리 잘 어울리는 한 쌍은 아닌데…. 그래도 함께 있을 만한 까닭이 있겠지? 원래 호랑이와 까치 그림은 중국에서 시작되었어. 중국에서는 호랑이 대신 표범을 그렸지. ‘표범’에서 ‘표’는 한자로 ‘豹(표범 표)’라고 써. 중국어로 ‘豹’는 ‘알리다, 전해 주다’라는 뜻을 지닌 ‘報(알릴 보)’자와 똑같은 소리가 난대. ‘바오’라고 읽거든. 그래서 표범은 ‘알리다’라는 뜻을 지녔지.

    까치는 기쁜 소식을 뜻하는 새야. 이것 말고도 까치에게는 중요한 역할이 하나 더 있어. 우리 조상들이 섬기던 서낭신(토지와 마을을 지키는 신)의 심부름꾼이었거든. 그림 속 까치는 지금 서낭신의 명령을 호랑이에게 전달하고 있어. 그러니 둘은 꼭 함께 있어야만 하지. 그래서 이 그림 제목도 ‘까치호랑이’야. 새해가 되면 이 그림을 집집마다 걸어 두었다고 해. 기쁜 일만 생기라는 간절한 바람을 담아서 말이야.

  • 작가 미상, ‘물고기’, 종이에 채색, 93.5 X 35.5cm, 개인 소장
    ▲ 작가 미상, ‘물고기’, 종이에 채색, 93.5 X 35.5cm, 개인 소장
    ● 떠돌이 화가들이 만든 수호천사
    이제까지의 옛 그림은 모두 작가가 분명했지. 하지만 이 그림은 달라. 도화서 화원의 솜씨도 아니고 선비 화가는 더욱 아니야. 그럼, 누가 그렸느냐고? 

    옛날엔 장에 가면 그림 그려 주는 사람들이 꼭 있었지. 이들은 모두 이름 없는 화가들이야. 이곳저곳 떠돌면서 사람들의 주문에 따라 그림을 그렸지. 까치, 호랑이뿐 아니야. 나비, 꽃, 용, 학, 물고기 등 종류가 다양했어. 모두 나름대로 의미가 있었지.

    까치와 호랑이는 사람들을 지켜 주는 수호천사였잖아. 모란꽃은 부귀영화, 물고기는 많은 자식, 학은 장수의 뜻이 담겼지. 이런 그림들은 방에도 걸고, 대문에도 걸고, 병풍으로도 썼어. 서민들의 행복을 지켜 주는 수호신이자 복을 부르는 역할을 했지. 이런 그림을 ‘민화’라고 해. 임금이나 선비가 아닌 일반 백성들이 그리고 즐긴 그림이지.

    민화는 사실 좀 엉성한 점이 있어. 떠돌이 화가들이 그렸으니 당연하지. 그래도 어느 유명 화가의 그림보다 더 훌륭한 뜻과 정성이 담긴 작품들이야. 앞으로 이런 그림을 만나면 마음껏 사랑해 주렴. 비록 서툴고 웃기게 생겼어도 우리를 지켜 주는 수호천사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