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민수 경찰관의 요즘 자녀學] 가족만의 ‘코로나 시상식’은 어떨까요
입력 2021.01.08 09:29
  • 지난해 코로나가 한창이던 여름방학 무렵, 아이들 사이에서 「코로나 방학 생활 규칙」이 화제가 되었습니다. 아이들이 말을 안 해서 그렇지, 아이들의 정보력은 부모가 모르는 시공간에서 부모보다 더 뛰어난 법이죠. 또, 문제가 생기면 아무리 어린 초등학생 자녀라도 칭찬을 받아보려고 일종의 눈치작전을 세우는 데 익숙합니다. 흔히 부모가 집에서 부부 싸움을 하면 아이들은 조용히 골방에 모여앉아 「부부 싸움 시 행동 요령」을 논의하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일단, 아이들이 세운 「코로나 방학 생활 규칙」을 보면 다음과 같이 되어 있습니다.

    1. 주는 대로 먹는다.

    2. TV 끄라고 하면 당장 끈다.

    3. 사용한 물건은 즉시 제자리에 갖다 놓는다.

    4. 한번 말하면 바로 움직인다.

    5. 엄마에게 쓸데없이 말 걸지 않는다.

    ※ 위 사항을 어기면 피가 ‘코로나’ 올 것이다.     

    얼핏 마지막 문장을 보면, 웃음이 묻어 나는 농담 같아 보이지만 전체 문장에 담긴 내용은 아이들이 코로나 때문에 얼마나 긴장된 하루를 보내는지 보여줍니다. 어쩌면 코로나 상황이 가장 편안해야 할 가족마저 긴장 관계로 만들어 버린 셈입니다. 특히, 코로나로 인해 가정이라는 공간이 부모에게는 일터가 되고, 아이에게는 학교가 되면서 업무와 수업 그리고 돌봄과 휴식의 경계가 희미해졌고, 굳건하다고 믿었던 가족의 정체성은 이미 위기를 맞은 지 오래입니다. 문제는 코로나 상황은 계속되고 있고, 새해에도 크게 달라질 기미가 보이지 않습니다.

    모르는 부모님이 있을 것 같아 말씀드리지만, 2021년 신축년(辛丑年) 새해가 밝았습니다. 원래 새해가 우리에게 전해주는 감수성이 있었지요. 그걸 우리는 ‘희망’이라고 불렀습니다. 하지만 이번 새해는 사뭇 분위기가 다릅니다. 코로나가 우리의 예상을 깨고 새해에 더 기승을 부리고 있기 때문이죠. 돌이켜 보면, 지금껏 “이런 새해가 있었나?” 싶을 만큼 새해가 조용하고 긴장되기는 처음입니다. 심지어 어떤 부모님은 “새해보다는 그냥 2020년 13월 같아요.”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2021년을 이렇게는 맞이할 수 없다”라는 아쉬움의 표현일 겁니다. 하지만 새해 신축년의 상징은 ‘흰 소’를 뜻한다고 하지요. 전통적으로 ‘흰 소’는 신성한 기운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군요. 게다가 ‘소’ 하면 우직한 모습을 빼놓을 수도 없죠. 그래서 2021년 새해는 어려운 상황인 건 맞지만, 다시 한번 가족 모두가 코로나 상황을 굳건하게 이겨내는 우직한 ‘소’의 모습을 닯았으면 좋겠습니다.

    새해를 맞아 저는 한 어머니로부터 특별한 새해 인사를 받았습니다. 어머니는 지난해 제가 집필한 「내 새끼 때문에 고민입니다만,」 이라는 책을 읽고 공감이 돼서 서적 사이트에 장문의 서평도 올려주셨고, 이후 자녀가 셋이다 보니 사춘기에 찾아오는 자녀 문제를 함께 고민했던 어머니셨죠. 근데 이번에는 새해 인사가 끝나자마자 들뜬 목소리로 가족이 진행한 ‘코로나 시상식’에 대한 에피소드를 들려 주었습니다. 그러니까 가족이 '코로나 시상식'을 기획하게 된 계기는 연말에 각 방송국에서 진행하는 ‘시상식’을 보면서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하더군요. 그러면서 시상식 운영위원장은 어머니가 맡고, 표창장과 선물 준비는 아버지가 맡았다고 했습니다. 특히 시상 부분에는 가족끼리 코로나 방역지침 문제를 풀어보는 ‘코로나 퀴즈 상’과 1년 동안 코로나를 잘 이겨내고 생활해 준 ‘코로나 극복 최우수상과 우수상’을 준비했고, 마지막으로 코로나 상황에서도 가족에게 웃음과 행복을 안겨준 ‘가족 공로상’을 정한 후 세 남매 모두에게 어울리는 표창장과 선물을 선사했더니 아이들이 무척 좋아했다고 했습니다. 무엇보다 시상식이 끝나고 집에서 조촐하게 고기 파티를 하면서 힘들었던 지난 1년의 기록을 유쾌하게 마무리할 수 있어서 좋았다고 하더군요. 그러면서 시상식 덕분에 아이들이 코로나 상황을 이해하는 시간이 되었고, 또 아이들이 상추쌈을 들었다 놨다 하며 그동안 부모에게 서운했던 속마음도 이야기해줘서 아이들의 마음을 이해하는 기회도 되었다고 했습니다. 저는 예능감 넘치는 어머니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새해에는 가족이 무엇을 해야 하는가?"에 대한 해답을 찾을 수 있어서 고마웠습니다.     

    어쩌면 어머니의 앞선 사례는 제가 말하고 싶었던 걸 대신하기도 합니다. 어머니는 어떻게 해서든 아이들에게 ‘격려’를 해주고 싶었을 겁니다. 그리고 ‘격려’는 새해에도 영향을 주는 ‘안전장치’의 역할도 기대할 수 있죠. 특히, 어머니는 아이들의 눈높이에서 보자면, 따분한 대화만으로 아이들에게 호응을 얻지 못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어머니가 가진 재치를 통해 엉뚱한 시상식을 고안해냈을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새해를 맞아 자녀를 위해 ‘격려’라는 절차와 방법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따지고 보면, 코로나 상황 속에서 부모도 힘들었지만, 아이들은 부모보다 더 힘들었습니다. 한 해 동안 많은 것을 상실하며 일상을 버텨야 했던 것에 대해 부모가 모른척해서는 안 됩니다. 아이는 중요한 시기에 정상적인 학교생활을 잃었고, 친구도 잃었으며 놀이마저 잃어버렸습니다. 게다가 이 모든 걸 3.5평 남짓 되는 자신의 방에서 비정상적으로 해결해야 했습니다. 그 고민을 함께 공감해줘야 합니다. 어쩌면 지금 상황에서 부모의 격려만큼 아이에게 힘이 되는 건 없습니다.

    또 ‘격려’를 하는 데 있어서 ‘자녀의 발언권’을 최대한 보장해주는 것도 중요합니다. 생각보다 아이들은 1년간 겪은 코로나 상황에 대해 부모에게 할 말이 많습니다. 부모는 대한민국 모든 아이가 겪는 상황인데 당연히 참고 이해해야 하는 거 아니냐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건, 모든 아이가 겪고 있으니 모든 아이가 발언권을 가지는 게 더 맞다는 것입니다. 더구나 1년이라는 시간이 그리 짧지 않은 시간인 걸 고려하면, 아이에게 잘못된 변화를 주기에도 충분한 시간이죠. 그래서 더 늦기 전에 부모는 아이에게 최대한 발언권을 주고, 지금껏 몰래 쌓아두었던 서운한 감정을 개운하게 풀 수 있도록 도와줄 필요가 있습니다. 어느 부모님은 “코로나 때문에 아이보다 부모가 더 힘들었는데 굳이 자녀에게 발언권을 줘야 할까요?”라고 반문하셨습니다. 부모 입장에서 보면, 틀린 말은 아니지만 중요한 건, 격려와 발언권은 상호 동등한 입장에서 진행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부모 또한 부모의 발언권을 통해 자녀에게 어려움을 털어놓는 건 부모의 권위와는 다른 문제입니다. 특히 부모의 고백은 자녀에게 ‘인정욕구’와 ‘자아효능감’을 갖게 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수 있습니다.     

    다시 아이들의 「코로나 방학 생활 규칙」으로 돌아가 볼까요? 새해가 시작되면서 아이들의 겨울방학도 시작되어 부모님들의 걱정이 늘었습니다. 방학 때문에 부모의 긴장이 다시 시작되었다고 하소연하는 부모님도 적지 않죠. 하지만 이번 겨울방학은 아이를 위해 부모님이 「코로나 방학 생활 규칙」을 만들어 보는 건 어떨까요? 그러니까 아이들이 규칙을 만든 것처럼, 부모도 아이에게 지켜야 할 규칙을 만들어 그 내용을 포스트잇에 적은 후 아이들이 자주 찾는 냉장고 손잡이 근처에 붙여두는 작전을 짜 보는 거죠. 여기서 중요한 건, 부모가 정한 「코로나 방학 생활 규칙」을 아이가 볼 수 있도록 냉장고에 붙여두는 것이 중요합니다. 수줍어하는 아이들에게 부모의 ‘포스트잇 효과’는 생각보다 재미가 쏠쏠할 겁니다. 아이들은 부모의 수줍은 잔글씨에 더 마음이 끌린다는 사실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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