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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민수 경찰관의 요즘 자녀學] 소년법에는 ‘소년’이 없다

입력 : 2020/06/02 09:55

‘소년법’이 또 주목받고 있습니다. 저뿐 아니라 이 글을 읽으실 독자 또한 소년법 논쟁이 새삼스럽지 않은 이유는 지금까지 숱한 소년 범죄들을 관전해왔기 때문일 겁니다. 2017년 부산에서 여중생 집단 폭행 사건이 발생하고 우리 사회에 큰 충격을 준 이후 지금까지 단 한 차례도 빠지지 않고 해마다 등장했던 게 소년범죄였고, 소년법 논쟁이었죠. 하지만 논쟁은 우리에게 소년법에 대한 기대감보다 ‘무력감’이라는 패자의 고통만 안겨준 듯합니다.

최근에는 10대 중학생들이 차량을 훔쳐 달아나다 사망사고를 낸 사건이 있었습니다. 당시 차량에 탑승했던 10대 아이들의 대화 내용과 경찰서에서 폼 잡고 찍은 사진이 소셜미디어에 유포되면서 네티즌들로부터 또 한 번 공분을 사기도 했죠. 무엇보다 안타깝게 목숨을 잃은 피해자와 유가족을 생각하면 입술이 떨릴 정도로 분을 참기가 힘들 지경입니다.

게다가 ‘n번방’ 성착취 사건에서 일부 공범들이 10대로 밝혀지면서 벌써 이들에 대한 소년법 적용을 둘러싸고 솜방망이 처벌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습니다. 더구나 피해 여성 중에는 어린 초등학생을 포함해서 다수의 미성년자를 협박해 성을 착취한 사실까지 밝혀져 ‘더는 소년 범죄자에 대한 관용과 특혜를 허락해서는 안 된다’라는 청원까지 들끓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소년범죄는 멈추지 않을 것이며, 지금보다 더 파괴적인 모습을 보일 것이 분명해서 걱정이 이만저만 아닙니다.

먼저, 소년법을 말하기 전에 소년법에 있는 소년에 대해 “우리는 소년을 모른다.”라는 명제를 한 번 주목해주시죠. 우리는 대개 ‘소년’을 잘 알고 있다고 착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소년을 선도하고 보호하는 청소년 상담 전문가들조차 지금의 아이들을 이해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고, 학교에서도 이제는 교육학을 적용하기가 쉽지 않다고 하소연을 늘어놓습니다. 그나마 경찰은 아이들이 피하는 ‘척’이라도 하지만, 전문상담사나 학교 선생님에게는 정면으로 맞서는 것이 소년들만의 행동지침이 됐습니다.

소년들이 이렇게 당당한 이유는 그들에게 “나는 잡히지 않는다.”, “나는 촉법소년이기 때문에 교도소에 가지 않는다.”라는 잘못된 신념이 내면화돼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잘못된 신념은 근래의 소년범죄에서 여실히 드러나고 있고, 더구나 이를 바라보는 아이들은 마치 게임에서 영웅을 마주하듯 학습하고 흠모한다는 사실입니다.

소년법의 폐지 논쟁을 불러오는 이유는 바로 아이들의 잘못된 신념을 깰 수 있는 마땅한 방법이 보이지 않는다는 데 있습니다. 하지만 소년법은 지금까지 숱한 논쟁에도 불구하고 폐지할 수 없다는 사실을 우리는 이미 여러 차례 확인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소년법을 제정한 것은 1958년으로, 한국전쟁 이후 모든 국민이 경제 회생이라는 국가적 과업에 매진하고 있을 때 소년들의 교육은 주춤했고, 생계형 범죄는 빠른 속도로 증가했습니다. 이러한 시대적 배경을 딛고 등장했던 것이 바로 소년법이었죠. 당시 정부는 ‘국가와 부모는 같다.’라는 외국의 ‘국친사상(國親思想, parent patriot)’을 소년법의 이념으로 받아들이면서 제정했고, 지금까지 총 12차례에 걸쳐 개정이 이루어졌습니다.

특히, 1958년 소년법 제정 당시 만 20세였던 소년의 나이가 2008년이 되어서야 만 19세로 낮아졌으며, ‘촉법소년’ 또한 법 제정 당시 만 12세에서 14세였던 연령이 2008년 법 개정을 통해 만 10세에서 14세로 내려가 현재까지 적용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사회변화의 속도에 비해 법적 연령이 10년이 지난 지금도 똑같이 적용되고 있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소년법 폐지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이유는 ‘UN 아동 권리협약’이라는 국제법이 견고하게 버티고 있고, 민주주의의 원칙이라는 큰 줄기가 바탕에 깔려있기 때문입니다.

결국, 현실적인 처방을 내려야 한다면 소년법 폐지보다는 소년법 개정이 타당해 보입니다. 그리고 소년법 개정에 앞서 우리가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소년법에는 소년이 없다.”라는 사실입니다. 물론 학계에서는 책임 연령의 인하가 소년범죄의 감소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반론도 적지 않습니다. 또 논리적으로 터무니없는 이야기도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년법 개정을 서둘러야 하는 이유는 바로 우리가 딛고 서 있는 사회구조 때문입니다.

우리는 요즘 아이들을 가리켜 ‘디지털 세대’라고 부릅니다. 인터넷과 스마트폰의 출현으로 온갖 사회 시스템이 디지털이라는 부품으로 조립된 지 오래고, 점점 아이들의 체형으로 맞춰진 지금의 사회는 이미 기득권의 상식을 넘어서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다시 말해, 우리는 역사적으로 단 한 번도 체험하지 못한 뜻밖의 세상을 경험하고 있으며, 중요한 건 소년들이 주류이고, 우리는 비주류라는 사실입니다. 그러다 보니, 디지털 기술은 저절로 아이들에게 오만한 품행과 무모한 자신감을 가르쳤고, 결국 사회가 할 수 있는 통제기능은 제대로 힘도 써 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소년법의 나이를 판단하는 데 있어서 사회변동을 빠뜨리고 생각할 수는 없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또, 소년법 개정과 더불어 우리가 놓쳐서는 안 될 숙제가 바로 소년범의 ‘재범률’입니다. 법무부 자료에 따르면 2018년 청소년 보호관찰 대상자의 재범률은 12.3%이고, 성인 보호관찰 대상자의 재범률은 5.6%를 기록했습니다. 또 2017년에는 청소년, 성인 각각 12.8%, 5.6%를 기록했고, 10년 전인 2009년에는 11.3%, 4.6% 등으로 나타나는 등 청소년의 재범률이 성인의 재범률을 10년간 2배 간격으로 유지하고 있다는 것은 지금 당장 우리가 고민해야 할 대목이고, 이는 곧 소년범죄의 재범률이 전담 인력의 부족과 무관하지 않다는 것을 말합니다.

결국, 이대로 소년법을 그대로 두었다가는 ‘n번방’ 사건은 시작에 불과하고, 앞으로 또 어떤 무기를 장착해서 우리를 위협할지 걱정입니다. 또 '정의'라는 측면에서 보자면, 소년법으로 인해 무조건 피해를 고스란히 도맡아야 하는 지금의 대응이 과연 정의로운가를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여기에 우리 사회가 소년들을 향해 가지는 ‘불신’과 ‘혐오’도 걱정입니다. 수년간 이어져 온 소년법 개정 논쟁은 지금 시대를 살아가는 청소년들을 위축시켰을 뿐만 아니라, 싸잡아 매도당하는 보이지 않는 차별적 시선에 곤욕스러워하고 있으니까요.

더 중요한 건, 소년법이 피해자를 외면하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형사법에서 처벌은 곧 피해자의 회복을 의미하고, 법의 이념이기도 합니다. 처벌이 범죄자의 교정과 사회 안전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억울한 피해자의 '회복'을 등한시한다면 이는 명백한 소년법의 직무유기일 수밖에 없습니다.

맞습니다. 소년법은 소년을 설득하는 법이 되어야 합니다. 결코, 소년법의 개정이 단순히 소년범죄의 처벌만을 강화하는 ‘응보적 절차’로 몰아가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소년법에서 '소년'의 기준이 과연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그 '소년'이 맞는지를 검토하고, 또 소년법의 목적에 맞게 현행 소년법이 소년의 환경 조정과 품행 교정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는지를 신중하게 들여다봐야 할 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