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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현의 오묘한 오뮤(오페라&뮤지컬) 산책] 라보엠과 렌트편

입력 : 2020/05/29 09:43

▲ 닮은꼴의 이야기
하나의 작품은 그 자체로 완성도가 높습니다. 작품 안에서 사건이 전개됨에 따라 감정이 변화하고 갈등이 증폭됩니다. 흔히 기-승-전-결이라는 말을 쓰는데 바로 이러한 내용의 전개를 의미하는 표현입니다. 그런데 여러 작품들을 만나다 보면 비슷한 모습을 하고 있는 작품들이 있습니다. 작품이 작가의 창작물이긴 하지만 절대적으로 하나의 작품이 이전에는 없었던 전혀 새로운 것일 수는 없습니다. 특히 오페라와 뮤지컬은 배경으로 하는 이야기가 있거나, 영향을 주는 요소가 많기 때문에 단독으로 떨어뜨려서만 보기는 쉽지 않습니다.

초기의 오페라는 귀족들의 문화 욕구에 맞추기 위해 완성도 높은 신화나 전설을 기반으로 했으며, 유명 작품들도 이미 성공한 문학 작품을 모티프로 하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뮤지컬은 여러 장르가 혼재되면서 다른 작품과의 관련성은 더 커지게 됩니다. 이처럼 오페라와 뮤지컬은 그 자체만으로도 완성도가 높고 재미있지만, 서로 밀접한 관련을 갖고 있는 작품들을 함께 알아본다면 더 깊이 이해할 수 있고 새로운 면을 찾아볼 수 있을 것입니다. 아울러 자연스럽게 각 장르가 갖고 있는 특징과 매력을 찾을 수 있고, 문화 콘텐츠가 창의적으로 확장될 수 있음을 확인하게 됩니다. 이러한 점을 우리 아이들이 배운다면 비평능력을 자연스레 갖출 수 있을 것입니다.

이번 시간에는 오페라 <라 보엠>과 뮤지컬 <렌트>를 함께 만나보도록 하겠습니다.

/ 조선일보 DB

▲ 푸치니의 <라 보엠>
우리가 흔히 ‘오페라’하면 화려한 의상과 웅장한 음악 그리고 그에 걸맞은 스토리를 떠올리게 됩니다. 실제로 제작과 공연에 많은 비용이 들어가게 됩니다. 라이브로 음악을 연주해야 하기 때문에 오케스트라의 운영, 악곡의 제작, 무대 마련, 극장 운영 등등 이러한 이유로 관객의 주요 층은 귀족이거나 돈이 어느 정도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의 기호에 맞춰야 했기 때문에 오페라 곡은 귀족들의 삶 혹은 환상적 이야기를 담고 있는 경우가 많은 것이 사실입니다.  그런데 <라보엠>은 가난한 예술가들의 이야기입니다. 소금에 절인 정어리를 사온 다음 산해진미인 듯 이야기를 나누고, 물 한 병을 보고 고급 샴페인이 왔으니 축배를 즐기자고 이야기 합니다. 촛불 하나 켤 돈이 없어 빌리러 온 여자 주인공… 화려한 오페라와는 분명 다른 전개입니다. 이탈리아의 음악가 자코모 푸치니(Giacomo Puccini, 1858-1924)는 보편적인 감정을 개성 있는 음악으로 표현하였기 때문에 지금까지도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라 보엠>은 1896년 초연 당시 혹평을 받았는데요. 귀족들의 삶이 아닌 현실적인 가난한 예술가들의 이야기를 담았기 때문에 천박하다는 평가에 시달렸지만 주인공의 애절함과 진솔함을 담고 있는 음악 덕에 <토스카>, <나비 부인>과 함께 푸치니의 3대 뮤지컬로 평가받습니다.

/ 조선일보 DB

▲ 현대 판 ‘라 보엠’, <렌트>
1996년 초연된 <렌트>는 그 어떤 작품보다 강렬함을 주는 뮤지컬입니다. <렌트>는 등장 인물의 관계나 구조에 있어 <라 보엠>과 매우 유사합니다. 작가가 밝힌 바와 같이 가난한 예술가의 삶과 희망에 대한 노래를 현대적인 버전으로 재탄생시킨 작품입니다. <렌트>는 20세기 말의 뉴욕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파리의 가난한 예술가들을 옮겨 왔는데요. 직업도 현대적인 것들로 바뀝니다. 작곡가, 다큐멘터리 영화감독, 대학 강사로 모습을 바꿨지만 여전히 같은 이야기 구조 속에 있습니다. 전체적인 구조는 같지만 플롯은 다른 방향으로 전개됩니다.

1996년 브로드웨이에서 초연된 이후 엄청난 인기를 끈 <렌트>는 이전의 작품들이 얻었던 흥행 인기와는 확연히 다른 부분을 갖고 있는데요. 1980년대부터 이어진 대형 뮤지컬들과는 달리 젊은이들의 이야기를 담기 위해 파격적인 안무와 음악을 적용하여 이른바 MTV 세대에게 맞춤형으로 다가갑니다. 특히 주제 자체가 ‘젊은이들에게 희망을’이었기 때문에 매 공연마다 무대 앞 두 줄은 파격적인 가격에 판매하기도 합니다. 이러한 <렌트>는 젊은 세대들이 열광하는 대표 작품으로 자리하게 됩니다.

또 하나 이 작품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작가에 대한 극적 스토리인데요. 조나단 라슨은 처음 작품을 기획했을 당시 너무 많은 인물 설정으로 갈피를 잡지 못했다고 합니다. 이후 마이클 그라이프가 연출에 참여하며 완성되는데 이때까지 7년의 시간이 걸렸습니다. 영광스런 브로드웨이 초연을 앞둔 전날 라슨은 대동맥혈전으로 숨을 거둡니다. 거짓말 같은 이런 사연으로 많은 주목을 받았고, 완성도 높은 작품에 대한 호평이 이어지는데요. 예술성도 인정받아, 토니상의 핵심이라 불리는 작품상, 작곡상, 극본상을 받았고 퓰리처상까지 받습니다.  지금도 젊음을 상징하는 대표 작품으로 새롭게 재구성되고 있습니다.

▲ 가난한 예술가들의 노래
<라 보엠>은 제목 자체가 ‘보헤미안’으로 가난한 예술가들을 뜻합니다. <렌트> 역시 ‘임대’를 의미하고 있죠. 지금이야 예술이 산업과 만나 큰 소득을 얻기도 하지만 역사적으로 볼 때 예술가들의 삶은 그다지 넉넉지 못했습니다.  자신이 쓴 원고를 난로에 넣으며 자조적인 유머로 승화시키는 로돌포의 모습은 안쓰러움을 줍니다. 예술가들은 그 누구보다 숭고하고 아름다움을 추구하지만 현실에서 기다리고 있는 것은 가난이었습니다. 그 누구보다 아름다운 그림을 남겼던 빈센트 반 고흐도 참 많이 가난했었죠. 르네상스 시대에 귀족들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는 경우도 있었지만 많은 예술가들은 가난했습니다. 가난한 예술가들의 삶은 예술 작품의 소재로 많이 활용되곤 했는데요. 이는 예술가 자신들의 자화상이기도 했습니다.

우리 아이들에게 이러한 예술가들의 삶을 오늘의 산업화된 예술과 함께 제시해보고 생각하게 한다면 여러 의미를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예술적 감성과 아이디어가 분명한 경쟁력이라는 사실도 알 수 있게 되겠죠. 닮은꼴의 두 작품을 함께 살펴보면서 그 차이를 찾아보는 시간을 가져보길 바랍니다.

다음 시간에는 푸치니의 또 다른 명작인 <나비 부인>과 세계 4대 뮤지컬 중 하나인 <미스 사이공>을 함께 만나보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