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정 취소 몰린 상산고 “소송 시 승소 확신”
입력 2019.06.21 11:25
-“기준 점수 80점은 사회상규에 맞지 않아”
-“학생 혼란 최소화하는 게 법원 기본 입장”
-자사고 폐지 두고 보수·진보 논쟁도 격화
  • 자사고 재지정 평가에서 기준 점수에 미달한 전주 상산고와 안산동산고가 법적대응을 예고했다. /조선일보 DB
  • 올해 자율형사립고(자사고) 운영성과(재지정) 평가 결과 전주 상산고등학교와 안산동산고등학교가 기준 점수를 넘지 못해 일반고 전환을 앞뒀다. 아직 평가 결과에 대한 청문절차와 교육부장관의 동의 절차 등이 남았지만 회생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게 교육계의 관측이다. 상산고와 안산동산고 모두 불공정한 평가라며 반발하고 있고, 소송도 불사하겠다는 입장을 밝혀 한동안 혼란이 지속할 전망이다.

    상산고는 20일 오전 전라북도교육청의 평가 결과 발표 직후 행정소송을 예고했다. 박삼옥 상산고 교장은 “정해진 결론인 ‘자사고 폐지’를 밀어붙이기 위한 편법”이라고 비판했다. 안산동산고 측도 절차에 따라 청문절차를 진행하면서 이후 법적 대응도 할 것이라고 전했다.

    ◇ 법조계 “교육감 재량권 일탈·남용 가능성 커”

    법조계에선 두 학교의 승소 가능성을 크게 보고 있다. 특히 전문가들은 기준 점수가 80점으로 다른 시·도교육청 평가보다 높았던 전북도교육청의 경우 ‘재량권 일탈·남용’에 해당할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상산고는 이번 평가에서 79.61점을 받아 0.39점 차이로 기준 점수를 채우지 못했다.

    이명웅 이명웅법률사무소 변호사는 “사회적 상식의 관점에서 80점은 지나치게 높아 통과를 기대하기 어려운 수준”이라며 “기준 점수를 정하는 재량권이 교육감에게 있지만, 사회상규를 넘어선 수준인데다 상향의 근거도 뚜렷하지 않아 패소할 소지가 크다”고 설명했다.

    법원은 앞서도 한 차례 자사고 폐지에 제동을 건 선례가 있다. 대법원은 지난해 판결에서 자사고 지정 취소를 결정한 교육청과 이런 결정을 철회하도록 요구한 교육부 간 소송에서 교육부의 손을 들어줬다.

    나정은 법무법인 로고스 변호사는 “학교 관련 소송은 학생에게 미치는 파급력이 크다는 점을 고려해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는 게 법원의 기본 입장”이라며 “79.61점은 결코 낮은 점수가 아니라는 것도 법원의 고려사항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앞서 교육부는 이번 재지정 평가 기준 점수를 기존 60점에서 70점으로 상향해 권고했다. 엄격한 평가가 필요하단 이유에서다. 이에 따라 전북도를 제외한 다른 시·도교육청은 모두 기준 점수를 70점으로 정했다. 그러나 전북도교육청은 “70점은 일반고도 통과할 수 있는 수준”이라며 보다 80점으로 상향했다.

    상산고 측도 승소를 자신했다. 박 교장은 “사회통합전형 대상자 선발 등 법률과 다르게 적용한 평가지표가 있는 만큼 소송을 제기하면 확실히 승소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자립형사립고로 출범한 상산고는 법적으로 사회통합전형 대상자 선발 의무가 없지만, 이번 평가에는 해당 지표가 4점 배점으로 포함돼 상산고의 기준 점수 미달에 결정적 영향을 줬다.

    실제 소송은 7월말~8월초가 될 것으로 보인다. 교육부가 지정 취소에 동의하지 않는다면 행정소송을 제기할 필요가 없어지지만, 동의할 경우 학생모집 혼란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라도 8월까지 결론을 내려야 하기 때문이다. 상산고 측은 교육부의 결정이 나는 대로 곧장 지정 취소 가처분 신청과 행정소송을 제기할 방침이라고 전했다.

    교육부는 소송에 대한 자세한 언급을 피했다. 교육부 한 관계자는 “지정 취소 신청서를 받은 다음 살펴볼 것”이라고 답했다.

  • 박삼옥 전주 상산고 교장은 교육당국이 끝내 자사고 재지정 취소를 결정할 경우 행정소송과 가처분신청을 제기하겠다고 밝혔다. 박 교장은 "승소를 확신한다"고 전했다. /조선일보 DB
  • ◇ “수월성 교육 폐지” vs “귀족학교 폐지” 논쟁

    이처럼 자사고 폐지가 현실화하고 소송전 조짐을 보이면서 결과 발표를 앞둔 자사고도 혼란에 빠졌다. 한 자사고 교장은 “설마 설마 했는데 역시였다”며 “자사고를 폐지하겠다는 정부의 정책을 밀어붙이는 마당에 이번 평가를 통과한다고 해도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토로했다. 이 교장은 “일부 자사고 교장들은 체념하는 마음으로 ‘기도나 하자’며 마음을 다스리고 있다”고 덧붙였다.

    교육계도 들끓고 있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교총)는 이번 평가 결과에 대해 “일방적인 재지정 기준, 평가지표 변경에 따른 불공정한 변경”이라며 철회를 요구했다. 교총은 또 “교육감의 이념·가치를 학생·학부모의 교육권보다 우선시하는 처사이고 교육법정주의마저 훼손하는 것”이라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자사고 폐지는 수월성 교육을 포기하는 것이란 지적도 있다. 한국사립초중고등학교법인협의회(초중고법인협)는 자사고 폐지를 위한 불공정 평가를 중단해야 한다는 내용의 논평을 통해 자사고가 교육경쟁력 강화에 기여해 왔다고 주장했다.

    초중고법인협 관계자는 “자사고는 과거 평준화된 고교교육의 보완책으로 시작한 정책”이라며 “학생의 학교선택권을 확대하고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해 인성교육과 문화예술활동, 체력증진, 비교과활동 등 교육경쟁력 강화에 크게 기여했다”고 강조했다.

    반면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는 논평을 통해 전북도교육청의 결정을 지지했다. 전교조는 “자사고는 고교서열화 체제 강화, 입시교육 과열, 학부모 교육비 부담 가중, 고교입시에 따른 사교육 팽창 등으로 공교육 파행을 낳았다”며 “폐지해야 한다는 국민적 여론이 높다”고 지적했다.

    교육시민단체인 사교육걱정없는세상(사걱세)도 자사고 폐지는 당연하다고 강조했다. 사걱세 관계자는 “상산고와 안산동산고에 대한 재지정 취소는 당연한 결과”라며 “다양한 교육을 실시한다는 자사고의 애초 목적이 왜곡돼 대입에 유리한 학교 교육과정으로 변질돼 사회적 책무성을 다하지 못하고 있어 취소가 당연하다”고 주장했다.

    ◇ 고교평준화 극복 위해 출범 … 입시교육 비판도

    자사고는 지난 2002년 고교평준화에 대한 불신이 커지면서 출범했다. 김대중정부가 고교평준화에 따른 교육 획일성을 보완한다며 자사고를 도입했고, 이명박정부에서 고교 다양화 300프로젝트를 실시하면서 한때 49곳까지 확대했다. 이후 높은 학비와 대입 위주 교육 문제가 불거지면서 비난 여론이 높아졌고, 2014년~2015년 박근혜정부에서 1기 자사고 재지정 평가를 진행하면서 폐지 논란이 더욱 거세졌다. 당시 조희연 서울교육감 등 일부 교육감은 자사고 지정 취소를 강행했으나 교육부 장관의 동의를 얻지 못한 바 있다.

    현재 전국 자사고는 42곳이다. 이 가운데 올해 평가를 받는 자사고는 모두 24곳. 내년엔 16곳이 평가를 앞뒀다.

    한편 입시전문업체는 자사고를 일반고로 전환해도 우수학생 쏠림현상은 막기 어려울 것이란 관측도 내놨다. 종로학원하늘교육 측은 “자사고로 전환하더라도 그간의 입시노하우와 교육환경 개선 등으로 일반고 중에서 선호도 쏠림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또 “자사고에서 재지정된 학교로의 쏠림현상도 발생할 수 있어 결과적으로 고교입시의 명문고 현상이 예상된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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