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교권침해 막으려 교사에게 업무용 휴대폰 준다는데…
입력 2019.05.17 10:30
  • #. 서울의 한 초등학교에서 근무하는 김중민(가명·33) 교사에게 지난 한 해는 악몽이었다. 반 학생의 어머니에게서 밤낮으로 전화가 걸려왔기 때문이다. ‘스쿨뱅킹이 제대로 되지 않는다’ ‘알림장에 적어온 준비물이 맞는지 궁금하다’ ‘우리 아이 좀 잘 챙겨달라’ 등 이유는 다양했다. 교사의 교육 방침에 대해 훈수를 두는 날도 있었다. 김씨는 “심할 때는 밤 10시를 넘어서도 단순 민원으로 전화를 걸었다. 한 번은 일이 있어 전화를 받지 못했더니 다른 번호로 연락이 와 ‘내 전화를 왜 받지 않느냐’며 따지더라”고 회상했다.

    김씨처럼 근무 시간 외에 휴대전화를 통한 과도한 민원 제기, 교권침해로 고통받는 교사들을 위해 각 시·도교육청이 팔을 걷어붙였다. 교사들에게 업무용 전화기를 주거나 원번호가 아닌 별도의 번호로 전화와 문자를 주고받는 서비스 이용 요금을 지원하기로 했다. 그러나 정책의 실질적인 효과를 두고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모바일 메신저, SNS 등 교사 사생활 노출 막아줘

    정책을 가장 먼저 실행에 옮긴 곳은 충남도교육청이다. 충남도교육청은 이달부터 휴대전화 한 개로 두 개의 번호를 쓸 수 있는 ‘투넘버 서비스’ 이용료를 교육청 예산으로 지원하고 있다. 경남도교육청도 하반기부터 이 같은 사업을 시범적으로 실시할 계획이다. 서울시교육청의 경우 올 2학기부터 관내 유치원과 초·중·고교 담임교사에서 업무용 휴대전화 3000여 대를 지급하기로 했다. 휴대전화는 퇴근 시 학교에 두고 가며 긴급상황에 대비해 각 학교는 당직자를 두는 식으로 비상연락망을 구축할 예정이다.

    일부 교사들은 이러한 정책이 자신들의 고충을 덜어준다고 반긴다. 퇴근 후 학부모들의 전화에 시달리는 일을 막을 수 있어서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가 지난해 6월 전국 유치원과 초·중·고교 교원 1835명에게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근무 시간 구분없이 수시로 학부모에게 연락이 온다”고 답한 응답자는 64.2%(1132명)였다.

    박광현(38) 충남 아산 신정중 교사는 “개인 휴대전화로 학부모나 학생들의 연락을 받게 되면 퇴근 후에도 전화기를 손에서 놓지 못한다. 업무의 연장선이나 마찬가지인 셈”이라며 “그런데 업무용 전화기를 이용하면 교사들이 비교적 편히 퇴근 후 개인 시간을 누릴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게다가 요즘에는 연락처와 모바일 메신저, 인스타그램·페이스북 등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가 하나로 연동돼 있다. 본의 아니게 번호 하나로 교사 개인의 사생활이 낱낱이 공개되는 셈이다. 충남 천안의 한 초등학교에서 근무하는 주영미(가명·40) 교사는 “예를 들어 여행 다녀온 사진을 모바일 메신저 프로필 사진으로 지정하면 엄마들 사이에 ‘이렇게 돌아다니면 수업 준비는 언제 하느냐’는 이야기가 나온다”며 “뒷말이 나오는 게 싫어 일부러 프로필 사진을 지우는 선생님들이 주변에 많은데 투넘버 서비스나 업무용 전화는 개인의 사생활 보호에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전화기 관리로 오히려 교사 업무 부담 ↑

    반면 이를 두고 “보여주기식 행정”이라며 달갑지 않다는 반응을 내비치는 사람들도 있다. 이 중에는 교사들도 포함됐는데, 이들은 투넘버 서비스보다 업무용 휴대전화 보급에 대해 부정적인 반응을 보인다. 경기 오산 소재 초등학교에서 일하는 김주연(가명·32) 교사는 “교실마다 일반 전화기가 비치됐는데 업무시간에만 사용 가능한 휴대전화기를 따로 주려는 이유를 모르겠다”면서 “오히려 기자재 관리로 인해 업무가 가중될 것”이라고 했다.

    “요금제를 결정하고 분실, 고장 문제를 처리하는 과정을 누군가는 맡아야 하잖아요. 전화기가 노후화되면 새로 사야 할 텐데 세금도 만만치 않게 들고요. 교권을 보호하려는 취지는 좋지만 들이는 돈에 비해 효과는 크지 않을 것 같아요. 차라리 기존에 교실에 설치된 전화기를 활용하는 방법을 고안하는 게 낫지 않을까 싶어요.”

    학부모와 교사 간에 거리감이 생길 수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서울 관악구에서 초등학교 3학년 자녀를 키우는 최지연(가명·37)씨는 “업무 시간에만 통화가 이뤄지면 회사에 다니는 맞벌이 부부는 언제 선생님과 편히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느냐”며 “학부모와 교사 사이에 벽이 세워진 느낌”이라고 토로했다.

    일각에서는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업무용 번호나 전화기 이용과는 별개로 학부모·학생 대상 교육을 지속적으로 펼쳐야 한다고 주장한다. 박정현(39) 인천 만수북중 교사는 “연 2회 정도 교권침해와 관련된 교육을 학생과 학부모들에게 실시해야 무너진 교권을 회복하고 보호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주요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