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에 심리학을 더하니 행복해졌어요”
입력 2019.03.22 10:30
-조난숙 한성대 교양학부 교수 인터뷰
  • 12일 서울 성북구에 있는 한성대학교에서 만난 조난숙 교양학부 교수는 “자신이 기존에 해오던 일에서 벗어나 새로운 일에 도전하고 싶다면 그 첫걸음은 자신을 정직하게 이해하는 일에서부터 시작하라”고 강조했다. /최항석 객원기자
  • 심리학과 수학. 이질적인 느낌이 강한 두 전공을 동시에 가르치는 교수가 있다. 조난숙(56) 한성대학교 교양학부 교수는 “학생들에게 수학을 좀 더 재미있게 가르치기 위해 고민하다 심리학을 만났다”며 “현재 수학과 심리학을 동시에 가르치며 삶이 달라졌다”고 말했다.

    ◇비교의식에 좌절도 했지만…로그함수에서 위로 얻어

    조 교수는 서울대학교 수학교육과 졸업, 동 대학원 수학과 석사과정을 마치고 7년간의 미국 유학생활을 거친 끝에 그토록 원하던 교수의 꿈을 이뤘다. 하지만 기대에 부풀었던 그가 경험한 수학 교수의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50명의 학생에게 수학을 가르치면 수업에 열심히 참여하는 학생은 10명 남짓에 불과했다. 학생들의 흥미를 유발하고자 금융수학이나 수학사 등도 가르쳤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수학을 어려워하는 학생들에게 상담을 통해 도움을 주려고도 해봤지만, 학생들은 오히려 그를 피하려고만 했다. 연구 생활에서도 만족하기가 어려웠다. 조 교수는 “소규모대학이나 교육중심대학 등에서는 수학과를 비롯한 기초학문 전공을 폐과하거나 컴퓨터 관련학과로 바꾸는 추세”라며 “우리 학교 역시 학부에 수학과가 없기 때문에 학문적 공동체 없이 ‘논문을 위한 논문’을 쓴다는 자기비판에 시달리기도 했다”고 말했다.

    그렇게 10년간 수학을 가르치고 연구해온 그는 자신의 삶이 행복하지 않다는 걸 깨닫고 새로운 길을 찾아나섰다. 조 교수가 택한 것은 바로 심리학. 수업과 연계된 학생 상담을 통해 한 사람의 긍정적인 변화에 영향을 미치는 사람이 되고 싶단 생각에서다. 지금껏 수학 연구에 투자해온 시간과 노력을 들이면 충분히 소화할 수 있을 것이란 자신감도 있었다. 조 교수는 고민 끝에 지난 2006년부터 횃불트리니티신학대학원대학교에서 기독교심리학 석사과정을 시작했다. 그러나 심리학을 공부하는 과정에서도 많은 어려움이 따랐다.

    석·박사과정을 지낸 8년간 하루의 반은 대학에서 강의하고, 나머지는 대학원에서 수업을 듣는 등 교수와 학생 신분을 오갔다. 이러한 상황에서 가장 힘들었던 건 심리적 어려움을 이겨내는 일이었다. 그는 “석사과정을 시작할 당시 주변의 시선을 굉장히 의식했다. 이미 대학교 동기나 선후배들은 심리학 관련 학회 임원을 맡거나 심리학자나 상담가로 이름을 떨치고 있었기 때문”이라며 “이들과 내 모습을 끊임없이 비교하면서 ‘한우물을 파지 못했다’는 좌절감까지 느꼈다”고 했다.

    하지만 조 교수는 포기하지 않고, 수학 공식을 통해 마음을 달랬다. “상담심리학에 대한 전문성을 갖추게 되는 시점을 로그함수에 대응해봤어요. 로그함수는 0에서 출발해 시간이 지날수록 증가속도가 0에 가까워지는 함수입니다. 예를 들어, 1만 시간을 앞선 사람과 처음 시작한 사람은 10을 밑으로 하는 로그함수 기준으로 4만큼 차이가 나지만, 이후 1만 시간이 더 지나면 그 차이는 0.3으로 매우 줄어듭니다. 자신만의 속도로 성실하게 노력하다 보면 격차가 줄어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비슷한 수준의 실력을 갖출 수 있단 의미죠.”

    조 교수는 지난 2012년 한국상담심리학회에서 상담심리사 1급 자격을 취득하고, 상담사와 지도교수(Supervisor)로 활동했다. 대학 내에서도 상담센터장과 교육대학원장을 차례로 역임했으며, 현재 한국상담학회 학교상담분과 학술위원장과 정신분석심리상담학회 부회장을 맡고 있다.

  • /최항석 객원기자
  • ◇인생 후반전 준비한다면…“자신이 하고 싶은 일 파악부터”

    40대에 새로운 학문을 공부하면서 자녀의 교육관에도 변화가 일었다. “심리학을 공부하기 전까지는 아이들의 학업을 매우 철저하게 관리하려고 했어요. 특히 수학은 제가 직접 아이들을 가르칠 정도로요. 하지만 새로운 학문을 공부하면서부터는 아이들 성적표에서 관심을 거뒀어요. 그리고 ‘꼭 일류대학에 가지 않아도 된다’ ‘엄마 아빠는 너희가 행복하길 바란다’는 말을 자주 해줬죠. 최근에는 아들이 미국 대학 졸업을 앞두고 1~2년간 자원봉사를 다녀오고 싶다고 해서 흔쾌히 허락했습니다. 최대한 많은 고민과 경험을 하며 인생을 마라톤처럼 길게 내다보고 설계할 수 있는 힘을 기르길 바라는 마음에서요. 덕분에 아이들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엄마가 됐죠.”

    가정뿐만 아니라 교수 생활도 이전보다 훨씬 행복해졌다. 조 교수는 현재 학부에서 심리학과 수학 강의를 동시에 담당하고 있다. 그는 “수학적 개념이나 지식을 학생들에게 일방적으로 전하기보단 이를 바탕으로 삶을 바라보는 자세도 함께 가르칠 수 있게 됐다”며 “가령, ‘나’라는 존재를 3차원 벡터에 비유한다면 여러 경험적인 요소를 더했을 때 4차원으로 상향 되는 것을 보여주며 인간의 성장과정을 설명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조 교수가 일반적인 수학 강의에 새로운 내용을 더하자, 학생들의 호응도가 높아지고 상담 요청도 잦아졌다. 최근에는 심리학과 수학에 대한 융합적 접근법을 보여주는 ‘마음에도 공식이 있나요?(덴스토리)’를 펴내기도 했다.

    “요즘 흔히들 100세 시대라고 하면서 40~50대에 인생의 후반전을 준비하잖아요. 이때, 멀리 있는 1Km를 내다보기보다 비교적 가까운 10~20m 앞에 있는 작은 목표부터 단계적으로 실현하는 게 좋습니다. 무조건 원대한 꿈을 이뤄내야 한다는 강박감을 갖는 건 바람직하지 않아요. 그러니 새로운 목표를 설정하고 도전하기에 앞서 자신의 하고 싶은 일이나 능력, 상황 등을 정확하게 파악하는 일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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