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벤트성' 진로교육 변화하려면…"지역사회 중심 교육해야"
입력 2018.11.19 16:50
-단발적인 진로교육으로는 지속적인 성찰 어려워
-상시적으로 진로교육 제공할 수 있도록 지역사회가 참여해야
-입시 관련해 학교 밖 학습경험 '생기부 기록' 필요해
  • #김가영(가명ㆍ중3)양은 고등학교 진학을 앞두고 나중에 어떤 직업을 가질지, 대학을 간다면 어떤 전공을 택할지 고민이 많다. 도움이 될까 싶어 진로 박람회를 찾은 김양은 아쉬움을 안고 돌아왔다. 여러 직업군을 수박 겉핥기식으로 체험할 수밖에 없어서다. 식물학자 부스에서는 미니화분 만들기 체험을 하고, 법조인 부스에서는 법복을 입어보는 식이었다. 김양은 "재미는 있었지만 진로 고민을 실질적으로 해결해주지는 못했다"고 했다.

    최근 들어 진로교육이 활성화되는 추세다. 2011년 교육부(구 교육과학기술부)에 진로교육과가 신설된데 이어, 2015년 진로교육법이 제정되는 등 진로교육은 국가차원의 주요 정책으로 자리 잡았다. 작년에는 국가 차원의 진로교육 전담기관인 국가교육진로센터가 설립되기도 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진로 박람회나 강연처럼 단발적으로 이뤄지는 진로교육이 많아 문제라고 지적한다.

    ◇'이벤트성' 진로교육 문제지만, 현 구조선 불가피한 측면 있어

    초ㆍ중등 진로교육 현황조사(2017)에 따르면, 중ㆍ고등학생의 진로활동 만족도는 비교적 낮은 것으로 보인다. 중ㆍ고등학생의 학교생활 만족도가 4.19와 4.06점(5점 만점 기준)인 반면, 진로활동 만족도는 3.76과 3.61점에 그쳤다. 진로체험 활동이 불만족인 주된 이유로 중ㆍ고등학생은 ‘나의 진로에 도움이 되지 않아서’, ‘내가 원하는 체험처가 아니라서’를 꼽았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진로교육이 ‘이벤트성’으로 이뤄지는 경향이 있다고 봤다. 양병찬 공주대 교육학과 교수는 “예컨대 진로 박람회를 찾아 하루만에 여러 진로를 백화점식으로 체험하는 경우가 다분하다. 정부가 적극적으로 추진하는 정책인 진로체험버스나 원격영상 진로멘토링도 단발적이기는 마찬가지”라며 “직업에 필요한 소양이나 태도를 배우기에는 한계가 있다”고 꼬집었다. 직업인들이 지역학교를 찾아가는 진로체험버스나 직업인이 온라인 플랫폼에서 수업을 제공하는 원격영상 진로멘토링은 길어야 4차시로 진행된다.

    이러한 이벤트성 진로교육은 자기 이해를 통해 진로를 찾는다는 본래의 역할을 다할 수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양 교수는 "이러한 양상은 박물관에서 박제된 직업을 보는 데 다름없다. 직업의 단편적인 측면만 보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손은령 한국생애개발상담학회장(충남대 교육학과 교수)은 국가진로교육포럼에서 “지나치게 체험 중심의 진로서비스가 넘쳐나게 되면 자신에 대해 관찰하고 성찰한 후 통찰에 이르기 보다는, 단시안적으로 직업을 결정하는 우를 범할 수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진로교육이 학교에만 의존하는 구조상, 이벤트성으로 부추겨지는 측면도 있다. 박정근 화홍고 진로진학상담교사는 "정부에서는 진로체험을 강조하는데, 학교 차원에서는 직업체험처를 확보하기 어렵다"며 "직업체험처를 찾고 연결하는 데 행정업무 등을 감당할 수 없으니, 대안으로 직업에 대해 잘 이야기해줄 수 있는 강사를 섭외해 강연 등을 진행하거나 박람회 등을 방문하며 간접경험 위주로 진로교육이 이뤄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일상 속에서 진로 고민 할 수 있도록 '지역사회 중심'으로 이뤄져야

    이에 진로교육에 있어 여러 대안이 제시되는 가운데, '지역사회 기반' 진로교육이 하나의 가능성으로 점쳐지고 있다. 이는 학교뿐 아니라 지역사회가 진로교육에 참여하는 방식으로, 주민이 자신의 일터나 경험을 공유하며 진로 체험 기회를 제공한다. 이러한 방향성 변화에는 2016년 자유학기제의 도입으로, 진로교육의 범위가 학교를 벗어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됐다는 점이 한몫했다.

    전문가들은 진로교육이 지역사회 중심일 때 상시적으로 이뤄질 수 있다고 본다. 일례로 광명시의 경우, 마을에서 10년 이상 해당 직업을 유지하며 산 주민이 직업체험처로 역할한다. 아이들이 동네 의류 장인, 약사, 카센터 사장을 찾아가 해당 직업에 대해 듣고 일을 경험해보는 식이다. 이은경 광명시 청소년재단 경영지원실장은 "아이들 삶에 영향을 미친다는 보람을 느끼니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교육을 제공한다"며 "한두 시간 교육에 그치지 않고 꾸준히 소통할 수 있는 관계가 된다"고 말했다.

    진로 교육이 취업 기회로 이어진다는 특성도 있다. 홍성교육지원청과 공동으로 마을교육공동체를 조성한다는 충청남도 홍성군에서는 지역 문화인과 귀농인 등이 진로교육을 제공하고 있다. 김태옥 홍성군 평생교육팀장은 "마을학교를 통해 동네 사진관에서 사진 기술을 체험한 학생이 타지로 떠나지 않고 사진관에 남아 일을 배우기도 한다"고 말했다. 조윤정 경기도교육연구원 학교교육연구팀장은 "마을에서 진로교육이 이뤄지면, 학생들의 정착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밝혔다.

    한편 원활한 진로교육을 위해서는 지역사회의 참여를 이끌어내는 게 관건이다. 1107개의 직업체험처를 발굴한 노원구의 경우 '청소년직업체험 일터지원에 관한 조례'를 제정하고 구청이 직접 자유학기제 직업체험처를 찾았다. 김지선 서울 노원구 아동청소년과장은 "보건위생과는 미용업, 제과점, 여성가족과는 국공립어린이집, 문화과는 문화관련 시설에 요청하는 식"이라며 "앞으로는 구청이 요청하기보다 지역사회의 자발적인 참여를 유도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임지연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선임연구원은 "장기적 진로교육을 위해 지역사회의 참여를 유도하려면 그들의 입장을 고려해야 한다. 학교와 지역사회 사이에 신뢰, 협업 관계가 형성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고등학교 진로교육에서는 입시라는 변수를 유의해야 한다. 유영주 경기도교육청 장학사는 “경기 마을공동체인 ‘꿈의 학교’가 호응을 얻는 건 학교생활기록부(생기부)에 기재되기 때문”이라며 “학교 밖 학습 경험이 학생의 학습이력으로 남는다면 지역 중심 진로교육이 활성화 될 것”이라고 말했다. 송은주 교육부 진로정책과장은 “학교 밖 활동을 생기부로 기록하는 것에 대해서는 교육부 내부적으로 논의 중이다. 부분적으로 인정해주자는 공감대는 있다”고 밝혔다.

  • 충청남도 홍성군의 장곡마을학교에서는 초등학교 4학년에서 6학년을 대상으로 꼬마정원사 프로그램을 비롯한 다양한 진로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홍성군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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