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 어렵다고요? 모르면 공부는 더 어려워집니다”
입력 2018.09.27 14:15
-‘선생님께서는 이렇게 설명해주셨어야 했다’ 저자, 권승호 교사 인터뷰
  • 권승호 교사는 학생들에게 한자어를 풀이해 가르쳐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는 “다들 한자가 어렵다고 하지만, 한자를 모르기 때문에 공부가 어려운 것”이라고 말했다./임영근 기자
  • #자유학년제를 마치고 중학교 2학년이 돼 처음 치른 시험. 김가영(가명)양은 아쉬운 마음이 컸다. 공부를 열심히 했음에도, 헷갈려서 고민하다가 찍은 문제가 한둘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예컨대, 국어시험에서 시의 표현 방식을 고르라는 물음에, 직유법, 은유법, 활유법의 뜻이 갑자기 헷갈리는가 하면, 사회시험에서는 영토, 영해, 영공의 의미가 머릿속에서 뒤죽박죽 섞였다. 한자어를 정확히 이해하지 못해 틀린 문제는 비단 이뿐만이 아니었다.

    ‘표준국어대사전’ 표제어의 약 57%가 한자어일 정도로, 우리말의 상당수는 한자로 이뤄졌다. 교과서에 나오는 어휘도 마찬가지다. 예를 들면 중학교 수학 교과에서 소인수분해, 최대공약수, 정수, 유리수, 방정식 등과 같은 개념은 모두 한자어다. 이런 점에서 권승호 전주영생고 교사(58)씨는 학생들에게 한자어를 풀이해 가르쳐야 한다고 강조한다. 권 교사는 “다들 한자가 어렵다고 하지만, 한자를 모르기 때문에 공부가 어려운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그가 본 많은 학생은 한자를 몰라서 개념을 무턱대고 외우곤 했다. 한자어의 의미를 풀어 이해하기보다는, 교과서에 쓰인 정의를 그대로 암기하는 식이다. 하지만 이러한 공부 방법에는 한계가 있다. 권 교사는 “명칭을 외우고 이와 별개로 그 뜻을 외우니, 나중에는 명칭과 의미가 따로 논다”고 말했다. “예컨대 한국사 시험에서 ‘빈민구휼기구’를 고르라고 했을 때, 상평창과 의창 사이에서 고민한 학생이 많을 겁니다. 둘 중 하나는 빈민구휼기구가 아닌 물가조절기관이라는 걸 아는 학생도, 한자어 명칭과 의미가 연결이 안 되니 헷갈릴 수 있죠.”

    하지만 한자어를 풀이하면, 음으로 뜻을 유추할 수 있어 의미를 혼동하지 않는다. 앞선 사례를 이어 권 교사는 “상평창은 항상 상(常)에 평평할 평(平), 창고 창(倉)을 쓴다. 항상 가격이 평평할 수 있도록, 즉 물가가 안정될 수 있도록 곡물을 푸는 창고다. 의창은 옳을 의(義), 창고 창(倉)으로 이뤄져 있다. 빈민이 배를 앓고 있을 때 곡식을 제공하는 의로운 일을 하는 창고라는 의미”라며 “한자어의 음에 따라 뜻을 풀이하면, 따로 외우던 명칭과 의미를 긴밀하게 연결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렇게 한자어를 풀이하는 공부법은 학년과 과목을 가리지 않는다. “초등학생이 배우는 수학도 예외가 아닙니다. 아이들이 많이 헷갈리는 개념 중 하나인 진분수와 가분수도 이렇게 설명할 수 있죠. 분수는 나눌 분(分)와 숫자 수(數), 즉 숫자를 나눈다는 의미로 1보다 작은 수를 나타내기 위한 개념입니다. 그러니 1보다 작으면 ‘진짜 진(眞)’ 진분수이고 1보다 크면 ‘거짓 가(假)’ 가분수입니다. 이처럼 모든 학년, 모든 교과의 한자어를 틈틈이 풀이해준다면, 이해가 편하고 암기가 쉬워지겠지요.”

    한자어 풀이는 일상 속에서도 쉽게 적용 가능하다. 그 또한 지금은 의사와 교사로 장성한 아들과 딸이 청소년이었을 때, 이를 실천해왔다. “차를 타고 갈 때, 가로수(街路樹)가 어떤 뜻을 지닌 단어인지 아이와 함께 추론해보는 식이죠. 거리(街)와 길(路) 옆에 놓인 나무(樹)라는 걸 함께 알아가는 재미가 있어요. 일상적으로 한자어 풀이를 하다 보면 아이에게도 ‘이 단어는 어떤 뜻으로 이뤄졌을까’ 하는 호기심이 생기고, 직접 사전을 찾아서 한자를 해석해보는 노력으로 이어집니다.”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한자어를 풀이해온 권 교사. 그의 담당과목은 한자가 아닌 국어다. 그래서인지 ‘국어공부가 재밌어졌다’는 제자의 말을 들었을 때를 한자어 풀이를 하며 가장 보람됐던 순간으로 꼽았다.

    “서울대에서 공부하는 한 제자가 저의 수업 방식으로 인해 공부에 즐거움을 느끼게 됐다고 말한 적이 있었어요. 새 학기 국어 첫 시간에 우리가 배우는 시의 99%는 서정시며, 서정은 펼칠 서(徐), 감정 정(情)으로 시적 화자가 자신의 감정을 펼쳐보인 것이라는 설명이 계기가 됐죠. 저는 단지 시의 의미를 풀어 설명해준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그 학생에게는 ‘감정을 이해하라’는 말이 시를 공부하는 새로운 방법으로 느껴졌나 봅니다.”

    한자어 풀이가 아이들의 공부를 보다 쉽고 재미있게 만들어준다는 것을 경험한 권 교사는 최근 한자어 풀이를 담은 ‘선생님께서는 이렇게 설명해주셨어야 했다’(이비락)을 퍼냈다. 어른들은 아이들이 어려워하는 한자어를 쉽게 지나치지만, 매일 마주하는 교사만큼은 이를 풀어 설명해줬으면 하는 마음에서다. “한자가 어렵다는 인식이 강하지만, 한자어 풀이는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한자를 읽고 쓸 정도가 되지 않아도, 한자의 음을 뜻으로 풀이할 수 있다면 충분합니다. 그렇다면 교과서에 있는 많은 한자어를 이해할 수 있고, 개념 이해부터 암기까지 공부의 많은 부분이 수월해질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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