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 수학 30번 VS 서술형 수학, ‘생각하는 힘’ 키우는 문제는?
입력 2018.08.21 11:09
-[인터뷰] ‘수학자’ 박형주 아주대 총장에게 듣는 ‘생각하는 힘 키우는 법’
  • 박형주 아주대 총장은 “학습량을 줄이는 우리나라 교육 제도 전반에 대한 개혁이 필요하며, 어려운 내용을 빼는 식으로 교육과정을 개편할 것이 아니라 생각하는 힘을 기르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 김종연 기자
  • 이달 초, 브라질에서 열린 세계수학자대회(ICM)에 난데없이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 수학영역 30번 문제가 등장했다. 전 세계에서 모인 내로라하는 수학자들은 해당 문제를 풀며 “gosh(어이쿠)”를 내뱉었다. 그들은 “창의성보단 기술적인 힘만 요하는 문제”라고 입을 모았다.

    세계 수학자들에게 우리나라 수학 문제를 건네준 이는 바로 박형주(54) 아주대 총장이다. 박 총장은 “지금 우리나라 수능 출제방식으로는 ‘생각하는 힘을 키울 수 없다’는 것을 확인하기 위해서”라고 이유를 밝혔다. 2월 취임한 박 총장은 2014년 우리나라에서 열린 세계수학자대회 조직위원장을 맡아 대회를 성공적으로 개최했으며 한국인 수학자로는 처음으로 국제수학연맹(IMU) 집행위원으로 선임되는 등 국내 수학의 권위자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수학자 출신인 그는 생각하는 힘을 키우는 방법으로 ‘수학’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시험방식과 교육과정에 변화를 줘 생각하는 힘을 기를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최근 ‘배우고 생각하고 연결하고’라는 신간을 펴낸 그를 지난 14일 아주대 총장실에서 만났다.

    ◇ ‘수포자’ 시대, 단답형 아닌 서술형 방식 고민할 때

    그렇다면 수학 출제방식은 어떻게 바뀌어야 할까. 그는 “수학에 이야기를 더하는 것부터 고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누가, 어떤 공식을, 왜 만들었는지’에 대한 고민과 ‘수학이 어떻게 활용되는지’에 대한 실용성을 생각해봐야 한다는 얘기다.

    예컨대, 그가 제안하는 새로운 수학교육은 이렇다. 미적분 공식을 가르치기 전에 “뉴턴이 미적분을 만든 것은 기하학이 너무 어려웠기 때문”이라며 탄생의 배경과 역사를 설명하는 식이다. 왜 이 공식을 배워야 하는지를 터득해야 이해력을 높이고, 단순 암기에서 벗어날 수 있어서다.

    “수학이 ‘재미없고 어려운 과목’이라는 꼬리표를 다는 이유 중 하나는 ‘이해’보다는 ‘암기’에 가까운 문제 풀이 방식 때문입니다. ‘해당 공식을 왜 배워야 하는지’ 이유를 찾으면 스스로 수학 공식에 대한 히스토리(history)또는 스토리(story)가 생기죠. 그러면 수학은 단답형이 아닌 서술형 과목으로 발전할 수 있습니다.”

    ◇한 문제 놓고 오래 생각하고 서술하는 연습 해야

    이에 일각에서는 ‘수학이 어려워 포기하는 수포자가 많은 상황에서, 서술형으로 바뀌면 더 어렵지 않겠는가’라는 지적이 나올 수 있다. 이에 그는 2015년 진행했던 한 가지 실험을 예로 들었다.

    실험은 이랬다. 박 총장은 당시 서울의 한 고등학교 1학년, 프랑스 고등학교 1학년에게 수학문제를 서로 바꿔서 풀게 했다. 우리나라 학교 시험은 50분에 20문제를 푸는 선다형이었고, 프랑스의 경우 두 시간에 다섯 문제를 푸는 형태였다. 우리나라 학생들은 풀이 과정을 쓰지 못한 채 답만 구하려 한 반면 프랑스 학생들은 선다형인데도 풀이과정을 쓰려 애썼다.

    이를 통해 박 총장은 “우리나라 시험 문제가 프랑스보다 4배 많았다”며 “짧은 시간에 많은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생각을 오래 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지금의 우리나라 수학 교육은 깊이 생각하지 않게 만들고 있어요. 이는 심각한 문제입니다. 생각하는 힘을 기르려면 적은 문제를 놓고 오랜 시간 생각하며 자기 생각을 서술하는 습관을 반드시 지녀야 합니다.”

    ◇ 교육과정, 줄여선 안 돼…어려운 내용이라도 흥미롭게 접근해야

    또한 그는 생각하는 힘을 키우기 위해서는 교육과정 자체의 변화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생각하는 힘을 키우기 위해선 ‘생각하게 하는 재료’가 많아야 합니다. 생각의 재료는 학교 교육과정과도 크게 연관돼 있어요. 그런데 최근 들어 우리나라 교육과정이 ‘학습량 경감’ 또는 ‘학습량 감축’이라는 명목으로 점차 줄어드는 방향으로 가고 있어요. 그런데 이는 생각하는 힘을 키우지 못하게 만들 것입니다. 생각하는 힘을 키우기 위해선 교육과정 및 교육제도 전반에 대한 개혁이 필요합니다.”

    실제로 우리나라는 1980년대 이후 30여 년 동안 7차례의 교육과정 개편이 진행했다. 그때마다 수학은 교과 내용이 줄어들었다. 지난 1일 세계 수학자들을 난감하게 만든 ‘수능 수학 30번 문제’는 이 같은 교육과정의 결과물인 셈이다.

    “생각의 재료는 줄였지만, 변별력은 높여야 하니 비비 꼰 문제만 낼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에 학생들은 근본적으로 생각하는 힘을 기르기보단 문제풀이 기술력을 쌓기 위해 사교육 시장에 의지하는 악순환이 되풀이되는 거죠.”

    박 총장은 생각하는 힘을 키우기 위해서 “어려운 내용을 빼는 식의 교육과정이 아니라 그것에 흥미롭게 접근하는 방향을 고민해야 한다”며 “생각의 재료가 풍부한 교육과정이야말로 생각하는 힘이 넘쳐나는 교육현장을 만들어 줄 것”이라고 강조했다. 

  • 박형주 총장은 프랑스를 비롯해 여러 나라의 교육을 진지하게 들여다보며 ‘생각하는 힘’을 키우기 위한 방법을 ‘배우고 생각하고 연결하고’ 책 속에 녹여냈다. / 김종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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