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교육 때문에 지친다면…“뻔뻔한 엄마로 거듭나세요”
입력 2018.08.09 15:10
-김경림 이연언어심리상담센터 대표 인터뷰
-영재라 불리던 일곱 살 아들, 생존율 5% 희귀암 판정받아
-건강을 되찾기까지 10년 동안 극한의 엄마 수업받으며 깨달은 것들
  • 김경림 이연언어심리상담센터 대표는 “엄마가 가장 아끼고 사랑해야 할 대상은 바로 ‘자신’”이라며 “스스로 삶을 만족스럽게 꾸려가는 태도야말로 아이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훌륭한 교훈”이라고 말했다. /양수열 기자
  • 엄마는 ‘슈퍼맘’을 꿈꿨다. 일과 육아를 모두 놓치지 않으려 항상 분주했다. 어릴 때부터 1등을 놓친 적이 거의 없는 똑순이 엄마는 당연히 제 아들도 그렇게 될 거라 굳게 믿었다. 또 육아지 기자로 활동하며 온갖 자녀교육 정보를 섭렵하다 보니, 누구보다 똑똑하게 아이를 잘 키워낼 자신이 있었다. 그의 기대에 부응하듯 큰아들은 어려서부터 모든 방면에서 두각을 보였다. 네 살에 한글을 다 읽고, 여섯 살이 되자 구구단을 술술 외웠다. 운동과 미술, 음악에도 재능을 보였다. 만나는 선생님마다 영재임이 틀림없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모든 것이 순조롭고 평화로웠다. 성공은 시간문제일 뿐 이미 손아귀에 있는 것으로 여겼다.

    그러던 삶에 변곡점이 찾아왔다. 큰아이가 초등학교 1학년을 마칠 무렵, 5년 생존율이 5%밖에 안 되는 ‘중추신경계 림프종’이라는 희귀암 판정을 받은 것이다. 그해 아이는 한쪽 시력을 잃었고, 이후 10년 동안 진정과 재발을 반복하며 힘겨운 투병 생활을 보냈다. 이 이야기의 주인공인 김경림(47·사진) 이연언어심리상담센터 대표는 인터뷰 내내 그간의 삶에 대해 담담하게 풀어갔다. 그는 “아픈 아이를 돌보는 엄마는 남들보다 더 희생하고 인내해야 할 거라는 시각과 달리, 오히려 그와 반대되는 ‘엄마 노릇’을 배웠다”면서 “100점짜리 엄마보다, 어쩌면 좀 부족한 60점짜리 엄마가 아이 인생에 더 훌륭한 본보기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사회가 바라는 엄마에서 벗어나자

    그렇게 김 대표는 영재 아들을 둔 잘나가는 커리어우먼에서, 한순간에 아픈 아이를 돌보며 병상을 지키는 엄마가 됐다. 그동안 건강하고 똑똑한 아이로 길러내고 싶은 바람은 물거품이 됐고, 그의 커리어는 뒷전으로 밀려났다. 한창 귀염을 부리는 두 돌 된 둘째 아들도 남의 손에 맡겨야 했다.

    난생처음 겪는 병원생활은 녹록지 않았다. 예상치 못한 일들이 하루에도 몇 번씩 일어났다. 엄마의 감정도 널뛰었다. 막막함, 두려움, 불안함, 분노, 억울함 그리고 안도감과 희망에 이르기까지 다양했다. 그러던 어느 날, 강한 항암치료로 눈뜰 힘조차 없는 아이에게 책을 읽어줬을 때였다. 그는 “당시 시골에서 마음껏 뛰노는 또래 아이가 주인공인 책을 읽어줬는데, 듣는 내내 흐뭇한 미소를 짓던 아들이 문득 ‘시골에 마당이 있는 집에서 살고 싶다’고 했다”며 “이후 1년간의 항암 치료가 끝나자마자 온 가족이 하던 일을 모두 그만두고 지리산으로 내려갔다”고 말했다.

    “그때 처음 ‘진짜 엄마’가 된 것 같았어요. 현실은 차가운 병원 침대에서 물 한 모금 넘기지 못하고 링거를 주렁주렁 단 채 일주일 넘게 누워 있었지만, 아이와 저는 병 너머 시골의 아기자기한 삶을 꿈꿨습니다. 그 순간만큼은 그저 아이의 존재를 온전히 느끼며 아이에게 집중했어요. ‘어떻게 하면 아이를 잘 키워낼까’, ‘완치할 수 있을까’ 등 어떠한 고민과 욕심도 없이 말이죠. 그 이후로 아이와 곁에서 함께 웃고 꿈꾸는 '진짜 엄마가 되는 법’을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현실 그대로 받아들이고 ‘진짜 엄마’로 거듭나다

    이후 김 대표는 이른바 ‘뻔뻔한 엄마’가 되기로 결심했다. 먼저 외부의 기준과 시선, 가치관으로부터 해방되고자 노력했다. 아이가 일명 ‘꽃길’만 걷도록 미리 준비하는 게 좋은 엄마의 역할이라고 여기던 생각을 내려놓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그는 “우리 사회는 엄마가 된 여성들에게 너무나 많은 역할을 주고 완벽하게 해내기를 요구한다”며 “하지만 그 기준에만 맞춰 살다 보면 늘 불안과 두려움에 떨고, 가장 중요한 아이의 상태를 간과하는 실수를 저지르게 된다”고 말했다.

    “엄마의 노력에 따라 아이의 인생이 달라질 거라는 사회적인 압력으로부터 뻔뻔해져야 합니다. 엄마가 최선을 다한다고 해서 항상 최고의 결과를 얻진 않습니다. 오히려 엄마와 아이 사이에 원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을까 봐 불안해하고 두려울 뿐이죠. 엄마는 아이의 운명을 좌우할 전지전능한 힘을 가진 신이 아니라, 그저 아이가 제 운명을 견딜 때 곁을 지켜주는 사람을 깨달아야 합니다. 사회가 정한 목표만을 좇기보단, 옆에 있는 아이에게 집중하세요. 아이와 함께 숨 쉬는 지금 이 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 느꼈으면 합니다.”

    아울러 김 대표는 엄마 노릇뿐 아니라 자신만의 삶을 찾기 위해 노력했다. 그는 엄마 노릇을 제외한 모든 일에 일단 부딪혀 보기로 마음먹었다. 그간 하고 싶어도 엄마라는 이유로 미뤄뒀던 자격증 공부도 시작하고, 책도 쓰기 시작했다. 지난해에는 조선대학교 상담심리학 박사과정에 도전해 현재 이수하고 있다. 석사과정을 졸업한 지 12년 만의 도전이었다. 그는 “세상이 정한 엄마 노릇을 하지 않는다고 해서 엄마가 아닌 것은 아니다”라며 “엄마 노릇 외에 다른 정체성을 경험하면서 스스로 삶을 만족스럽게 꾸려 나가려는 태도야말로 아이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훌륭한 인생 교훈”이라고 말했다.

    “부모가 자녀에게 해 줄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교육법은 바로 ‘보여주기’입니다. 세상이 강요하는 ‘좋은 엄마’ 노릇에 파묻혀 안달복달하기보다는, 조금은 부족하고 이기적이어도 제 삶의 즐거움과 행복을 즐기는 엄마의 모습을 보여주세요. 엄마가 스스로 만족스러운 삶을 살 때, 엄마도 아이도 지금보다 훨씬 좋은 관계를 맺고 유지할 수 있습니다.”

  • /양수열 기자
  • ◇세상에 완벽한 엄마는 없다

    현재 김 대표는 11년차 언어치료사이자 상담사로 활동하고 있다. 오랜 시간 생사의 기로에서 힘든 시간을 보냈던 큰아들은 다행히 건강을 되찾고 올해 성년이 됐다. 작은 시골 중학교 영어교사를 꿈꾸며 공부에 매진하고 있다. 아픈 형 때문에 신경을 상대적으로 덜 쓸 수밖에 없었던 둘째도 어느덧 사춘기가 한풀 꺾인 중학교 2학년이 됐다. 김 대표는 과거 자신이 그랬듯 아이의 미래가 엄마 손에 달렸다는 생각에 전전긍긍하는 엄마들을 위해 최근 ‘나는 뻔뻔한 엄마가 되기로 했다(메이븐)’ 신간을 펴냈다. 그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엄마라면 여러 가지 죄책감에 시달리기 마련”이라며 “하지만 그보다 상황 자체를 그저 받아들이고, 최선을 다한 자신을 위로해 볼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엄마가 가장 먼저 아끼고 사랑해야 할 사람은 ‘자신’입니다.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사랑하지 못하는 엄마가 아이를 온전히 사랑하긴 어렵습니다. 저 자신을 따뜻하게 안을 수 있어야 아이에게 사랑이 전해진다는 사실을 잊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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