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W] “현실도 ‘로그아웃’ 할래”…증폭되는 청소년 ‘리셋증후군’
입력 2018.07.20 14:30
  • # 초등학교 4학년 학생입니다. 요즘 학교, 친구, 가족 모두 마음에 들지 않아요. 저 자신도 너무 싫고요. 좋아하는 게임을 하다가도 뭔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아예 캐릭터를 삭제해버리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데 현실에서도 그럴 수는 없을까요. 지금의 상황을 모두 지우고 새롭게 태어나고 싶어요.” (김진우·가명)

    게임, 통신, 음란물 등에 중독된 성인들 사이에서 문제가 된 리셋증후군이 최근 청소년들에게도 나타나고 있다. 리셋증후군(Reset syndrome)은 컴퓨터가 원활히 돌아가지 않거나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때 리셋 버튼만 누르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것처럼, 현실 세계에서도 리셋이 가능하다고 착각하는 현상을 일컫는 말이다. 이에 해당하는 사람들은 조금만 어려움이 있어도 그것을 회피하고 다시 시작하려거나 사이버 세계와 현실 세계를 혼동해 범죄를 저지르곤 한다.

    이런 증상을 보이는 연령은 점차 낮아지는 추세다. 정보통신 기술의 발달로 판단력이 미숙한 유년 시절부터 각종 디지털 매체와 가상현실 게임에 노출되는 경우가 많아졌기 때문이다. 지난해 통계청이 발표한 ‘한국의 사회동향 2017’ 자료에 따르면, 초등학생 고학년(4∼6학년)의 91.1%, 중학생의 82.5%, 고등학생의 64.2%가 게임을 하고 있으며, 전체의 2.5%가 게임중독 상태로 분류되는 등 위험군은 해마다 증가하고 있다.

    실제로 최근 가상과 현실을 구분 못 하는 청소년들에 의한 사고가 발생하기도 했다. 지난 4일 제주에서 초등학생 A(12)군이 부모의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을 운전해 4대를 파손하고 1명을 다치게 한 것과, 지난 11일 대전에 사는 초등학생 B(9)군이 엄마 승용차를 몰래 운전해 차량 10대를 들이받는 사고를 들 수 있다. 특히 B군은 운전하던 당시 이를 발견한 한 성인 남성의 제지를 받았지만, 이를 무시하고 도주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후 경찰 조사에서 B군은 “인터넷과 게임에서 운전하는 법을 배웠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일각에서는 사고를 낸 초등학생들이 운전하게 된 원인이 리셋증후군에서 비롯됐다는 의견을 내놨다.

    이런 현상은 대인관계를 통해서도 드러난다. 온라인 인간관계에 익숙하다 보니 오프라인에서의 갈등 해결 능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 예컨대, 친구들과 싸워 사이가 틀어져도 화해하려는 노력보다 인연을 끊어버리거나 SNS에서 차단하는 등 피해버리는 것도 리셋증후군의 일종이다. 성적과 관련해서도 마찬가지다. 시험에서 목표한 성적에 미달하는 경우, 그것을 만회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이 아니라 아예 노력 자체를 포기해버리는 등도 이에 해당한다.

    이에 따라 전문가들은 청소년을 대상으로 가상과 실제를 구분하는 교육이 필요하다고 한다고 입을 모은다. 갈수록 발전하는 가상현실(VR)·증강현실(AR) 기술 속에서 살아가려면, 이러한 교육이 올바르게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동귀 연세대 심리학과 교수는 “청소년들이 어떠한 일을 직접 경험하지 않고 가상현실을 통해 간접적으로만 학습한다면, 현실에서 일어났을 때 그 피해를 가늠하기 어려워 결과에 대해 명확한 분석을 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일례로, 온라인 자동차 경주 게임을 경험한 청소년들은 대개 실제 자동차 사고가 나면 얼마나 피해가 큰 지 실감하지 못합니다. 온라인상에서의 간접 경험은 실제 상황 속 피해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지 않기 때문이죠. 하지만 현실에서 자동차 사고가 이토록 가볍지 않다는 교육이 병행된다면, 이러한 위험 요소를 낮출 수 있습니다. 마치 자동차 사이드미러에 ‘사물이 거울에 보이는 것보다 가까이 있음’이라는 경고 문구처럼 말이죠.”

    이러한 교육은 가정에서도 가능하다. 전문가들은 평소 부모와 자녀가 실생활 속 다양한 상황을 통해 결과를 예측하는 훈련을 하는 것만으로도 도움이 된다고 말한다. 이 교수는 “예컨대, 신호등이 노란불일 때 자동차가 빨리 건너가야 하는가, 멈춰야 하는가에 대해 토론해보는 등 부모와 자녀가 실생활 속 사례에 대해 자유로이 얘기해보는 것이 좋다”며 “이를 통해 아이들은 자신의 판단에 대한 결과를 예측해보며 가상과 현실이 다르다는 점을 깨달을 수 있고, 나아가 비평적인 사고와 자기조절능력을 기를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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