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산 쏟은 '선진형 교과교실제' 현장선 외면…“학생들 피로감 커”
입력 2018.07.16 16:38
-서울 소재 고등학교 24개 중 13개교 운영, 일부 교육청도 축소·폐지 고려해
-교육부 “고교학점제 추진 위해 필요…개선책 논의 중”
  • 피로하다는 비판에 선진형 교과교실제가 학교 현장에서 외면당하고 있다. 이를 운영하는 서울 소재 고등학교 절반이 축소ㆍ폐지했으며, 일부 교육청에서도 교과교실제에 대한 축소나 폐지를 고려했음이 드러났다. 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계없음. / 조선일보 DB
  • 학생들이 시간표에 따라 해당 교실을 찾아다니며 수업을 듣는 선진형 교과교실제가 학교 현장에서 외면당하고 있다. 이를 운영하는 서울 소재 고등학교 절반이 축소ㆍ폐지했으며, 일부 교육청에서도 교과교실제에 대한 축소나 폐지를 고려했음이 드러났다.

    중고등학교에서 시행 중인 교과교실제는 교사가 아닌 학생이 시간표에 따라 교과별 전용 교실을 찾아가는 제도다. 2009년 창의적 교실 수업 환경을 구축하기 위해 도입된 교과교실제는 2011년 본격적으로 확대됐으며, 현 정부에서는 공약 사항인 ‘고교학점제’의 시설을 구축하는 차원에서 지속적으로 추진되고 있다. 학교장이 교육청에 신청서를 제출하면, 교육청ㆍ한국교육개발원(KEDI)ㆍ교육부가 검토해 교과교실제 도입 학교를 선정하는 식으로 운영된다.

    현재 교과교실제는 '선진형'을 중심으로 확대되고 있다. 선진형 교과교실제는 일부 과목만 이동하는 과목중점형과 달리 모든 과목을 이동 수업하는 게 특징이다. 2014년부터 교과교실제를 도입하고자 하는 학교는 선진형으로만 운영 가능한데, 지난해 기준 선진형 교과교실제를 운영하는 중고등학교는 전국 781개교로 전체 중고등학교의 13.8%에 이른다. 이들 학교는 도입 시에는 리모델링을 위한 시설비를 지원받고, 이후에는 강사 인건비와 기자재 관리 등에 쓸 수 있는 운영비를 매년 받는다. 지방교육재정 알리미에 따르면 지난해 선진형 교과교실제 운영 학교가 지원받은 금액은 교당 평균 6966만원(2015년 기준 8000만원, 2016년 7571만원)이었다. 지난 3년간 총 선진형 교과교실제 운영비는 1585억 4000만원에 달했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교과교실제에 대한 아쉬움이 끊이질 않는다. 특히 학생들은 선진형 교과교실제에 피로감을 호소한다. 중1 이혜림(서울 서대문구)양은 "10분의 쉬는 시간 동안 옮겨 다니느라 바빠서 쉴 수가 없다"며 "짐이 많을 때는 무거운 가방을 계속 메고 다니기도 한다"고 토로했다. 중 2 김모(서울 동대문구)양도 "다들 같은 시간에 이동하다 보니 복도가 혼잡하고 사고도 잦다"고 지적했다. 소지품 분실도 잦아졌다. 중2 황모(충남 천안시)양은 “3월에 잃어버린 교과서를 겨울방학 앞두고 누가 가져다준 적이 있을 정도”라고 꼬집었다.

    이러한 부정적인 반응에 상당수 학교는 선진형 교과교실제를 도입한 지 몇 해 지나지 않아, 이를 폐지 또는 축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움직임은 특히 고등학교에서 두드러졌다. 서울시교육청의 ‘2018 교과교실제 운영 학교 현황’ 중 선진형 교과교실제를 운영한다는 서울 소재 고등학교를 일일이 확인해본 결과, 24개교 중 11개교(45.83%)가 몇 개 과목만 이동수업 하는 방식으로 축소하거나 아예 기존 방식으로 돌아간 것으로 나타났다. 해당 고등학교 측은 ‘학생과 학부모들의 비판을 반영한 결과’라 밝혔다. A 고등학교 관계자는 "선진형 교과교실제를 3년간 유지하고 나서 학생과 학부모를 대상으로 만족도 조사를 하고는 제도를 더 운영하지 않기로 했다"며 “학생과 학부모들이 피곤하다는 비판이 컸다"고 그 이유를 밝혔다. B 고등학교 관계자도 “이동수업이 효율적인 면보다 비효율적인 부분이 많다는 학생들의 의견을 반영해 재작년부터 점차 축소했다"고 말했다.

    이는 지방도 예외가 아니다. 일부 교육청도 교과교실제 폐지나 축소를 고려한 것이 확인됐다. 강원도교육청 관계자는 “교육감과의 대담에서 학생들이 비판 의견을 제시하는 등 현장에서 어려움이 많다고 해 교과교실제 폐지를 검토한 바 있다”고 말했다. 충청북도교육청 관계자는 “선진형 교과교실제 시행 학교라 하더라도, 학교 여건에 따라 일부 교과목만 이동 수업을 할 수 있도록 조치했다”고 말했다. 사실상 선진형 교과교실제를 과목중점형 수준으로 축소할 수 있도록 허용한 것이다.

    그러나 교과교실제를 축소하거나 폐지하는 건 원칙적으로 금지다. 교육부와 한국교육개발원은 교과교실 환경시설 구축 시점부터 7년 경과 전에는 시설을 변경할 수 없다고 안내하고 있다. 시설 노후화 등 불가피한 경우에 한해 시도교육청의 검토와 교육감의 승인을 받아 제한적으로만 시설을 변경할 수 있다. 그러나 서울시교육청 관계자는 변경 현황에 대해 "학교 측에서 임의로 변경한 건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런 현실에 대해 일각에서는 정책이 시기상조인 측면이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시설은 달라졌는데 수업은 변하지 않은 탓에 불만이 증폭됐다는 얘기다. 충청북도교육청의 교과교실제 운영 실태(2016년)에 따르면 ‘교실은 바뀌었는데 이전과 차별화되지 않는 수업은 이동수업에 대한 불만과 부정적 인식을 확산시켰고, 이는 만족도를 떨어뜨리는 가장 직접적인 원인’이라고 밝혔다. 교과교실제를 연구 및 지원하는 한국교육개발원의 교과교실제 관계자도 "수업이 아직 참여형·토론형·논술형으로 변화하지 않은 게 한 가지 이유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에 교육부 교육과정정책과 관계자는 “학생들의 피로감을 최소화하는 방안이 필요하지만, 고교학점제가 도입되면 이동수업은 불가피하다”며 “고교학점제 시설 연구 중에 교과교실제 개선도 검토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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