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원자력 전공 선택 '無', 무학과 선발 탓?
입력 2018.07.13 10:26
-“제도 이상적이지만… 요즘 현실에서는 우려의 시선도”
  • 이공계특성화대학을 중심으로 신입생을 전공 학과가 따로 없이 여러 학문을 공부하도록 하는 이른바 ‘무(無)학과’ 선발이 확대되고 있다. 무학과 선발은 모든 전형에서 학과 구분없이 학생을 모집하고 일정 기간 이후 학과를 선택하는 제도다. 일찍부터 한 가지 전공에만 얽매이지 말고 전공을 뛰어넘는 융합형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하지만 최근 학생들이 무학과 과정을 거치고 학과를 선택할 때 사회 변화 등에 따라 일부 학과 기피 현상이 발생하면서, 이에 대한 우려의 시선이 나오고 있다.

    최근 국내 과학기술특성화대학들이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대비한 융합형 인재 양성을 위해 무학과 제도를 확대하는 추세다. 실제로 국립 과학기술원 4곳(KAIST·GIST·DGIST·UNIST)과 포스텍(POSTECH)은 모두 무학과 체제를 도입하고 있다. 일찍부터 무학과 체제를 도입한 KAIST를 비롯해 GIST 등은 현재 무학과로 신입생을 선발해 일정 시기가 지난 이후 전공을 선택하는 방식을 운영한다. UNIST는 학과 구분없이 계열로만 나눠 신입생을 뽑고, DGIST는 모든 학생이 융복합대학 기초학부로 입학한 다음 4학년이 되면 각자 선택한 진로에 따라 집중 심화교육을 받는 무학과 단일학부 체제를 운영한다. 포스텍도 올해부터 창의IT융합공학과 20명을 제외한 나머지 모집인원 300명을 단일계열 무학과로 선발한다. 이때 대학들은 학생이 원하는 학과로 100% 배정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학생 선택에 따라 학과 정원이 결정되는 셈이다.

    하지만 이에 따른 부작용이 속속 나오고 있다. 그중에서도 특히 최근 들어서는 정부 기조와 취업률 등에 따라 일부 학과를 꺼리는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다. 정부의 '탈(脫)원전' 정책으로 학생들의 원자력 관련 학과 진학이 급감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 KAIST 원자력 및 양자공학과는 1991년 학부 과정을 개설한 이후 27년 만에 처음으로 신입생 제로 사태를 맞았다. KAIST는 올 가을학기에 2학년으로 진학할 예정인 94명의 학부생 중 원자력 및 양자공학과 지원자가 0명이라고 밝혔다. 이로써 지난해 하반기 원자력 및 양자공학과 전공에 지원한 5명이 KAIST 원자력 및 양자공학과 2017학번의 총원이 됐다. UNIST도 올해 2학년에 진학하는 386명 중 4명만 원자력 과학 및 공학 트랙(NSE)에 희망했다. 이번 2학기 대상자 35명 중에는 지원자가 단 한 명도 없었다.

    반면, 전기전자공학부 등 상대적으로 취업에 유리한 전공에 대해선 쏠림 현상이 극대화하고 있다. KAIST의 경우 올해 전기전자공학부 전공을 선택한 학생은 190명으로, 2년 전 127명에 비해 크게 늘었다. 같은 기간 전체 신입생 중 전기전자공학부 진학자가 차지하는 비율도 14%에서 23%로 급증해 학과 간 명암이 엇갈리고 있다.

    일각에서는 무학과 선발 취지는 좋으나, 취업률과 사회 변화 등에 따라 급변하는 국내 환경과는 맞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로 한 이공계특성화대학 재학생은 “전공에 구애받지 않고 마음껏 공부하며 진로탐색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무학과 선발이 이상적인 교육 방식이라고 생각하지만, 대다수 학생이 전공을 택할 때 사회적으로 주력하는 산업 또는 취업률이 높은 학과를 고려할 수밖에 없는 것이 요즘의 현실”이라며 “제도의 비현실적인 부분에 대해서는 고민해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 실정에 맞는 학과 운영 체제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차국헌 서울대 공과대학장은 “서울대도 과거 관련 학과를 합쳐 신입생을 모집하고 2학년 때 학과전공을 선택하도록 했으나, 특정학과 쏠림 현상 등으로 지금은 아예 학과별로 나눠 신입생을 모집하고 있다”며 “학과 취업률과 정부 기조 등에 더욱 민감한 국내 입시 환경에서는 어느 정도 학과별 모집 단위를 유지하면서 그 안에서 유연성 있게 조절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한 대학 공학계열 교수 역시 “국가와 대학이 이대로 좌시해서는 안 될 문제”라며 “나중에 비인기학과 분야를 키우고 싶어도 키울 수 없는 상황에 빠질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무학과 제도를 운영하는 이공계특성화대학에서는 학과 간 칸막이를 친다고 해서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학생들이 자신이 유망하다고 생각하는 학과를 찾아가는 것은 당연한 논리인데, 이러한 문제의 원인을 단순히 무학과 제도에서 찾는 건 옳지 않다는 것이다. 김도연 포스텍 총장은 “급변하는 미래 사회를 살아갈 학생들이 앞으로 경쟁력 있는 학과를 찾아 자신의 진로를 설정하는 건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단언했다. 그는 “관련 산업 경쟁력 약화에 대한 고민도 중요하지만, 대학은 학생 개개인의 진로 선택권과 자기주도적 학습 동기 부여를 우선으로 여겨야 한다”며 “전공에 국한되지 않고 학생들이 주도적으로 지식을 쌓고 다양한 분야를 경험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대학의 일차적인 역할이기 때문에 무학과 제도는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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