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별 막는 ‘반편견 교육’, 들어 보셨나요?
입력 2018.06.18 16:00
-교실 구성은 다양해졌는데 편견·차별 여전
-반편견 교육으로 차별에 대응할 힘 길러줘야
  • 반편견 교육에 사용하는 위인전과 동화.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긍정적인 이미지를 재고하고, 동물에 빗댄 이야기로 편견을 교정한다. /최예지 기자
  • “사자의 가족은 누군가요?”
    “할머니, 할아버지, 엄마, 아빠⋯ 많아요!”
    “팔색조는 누구랑 사는 동물이라고 했죠?”
    “아빠!”
    “표범은 누구랑 살아요?”
    “엄마요!”
    “여러분의 가족은 어떤 동물이랑 비슷해요?”

    김모(7)양은 부모의 이혼 후 어머니와 함께 사는 한부모 가정 자녀다. 하지만 김양이 자기 입으로 한부모 가정 자녀라고 얘기하지는 않는다. 어린 김양도 한부모 가정을 ‘보통의 가정’이 아니라고 보는 분위기를 은연중에 느껴서다. 그러나 최근 어린이집 ‘반(反)편견 교육’ 시간에 동물을 통해 ‘어떤 가족도 틀리지 않다’고 친구들과 함께 배우면서 김양은 달라졌다. 친구들이 한부모 가정을 부정적으로 인식하지 않고 편견에서 벗어나니, 김양도 자신감이 생긴 것이다. 이제는 “우리 가족은 표범 가족”이라며 한부모 가정임을 자연스럽게 밝힐 수 있게 됐다.

    사회가 다양해지며, 교실 구성도 다양해졌다. 장애인, 비장애인, 다문화 가정 자녀, 한부모 가정 자녀, 입양 가정 자녀, 탈북민 자녀 등 서로 다른 배경과 특성을 가진 학생들이 교실을 이루지만, 사회적 소수자 학생들은 여전히 편견에 멍든다. 김현아 서울사이버대 상담심리학과 교수는 “사회적 소수자의 상담 사례가 과거에 비해 많이 늘었다”며 “이들에 대한 거리감이 우리 사회에 여전히 존재한다”고 말했다.

    차별은 편견에 뿌리 두고 있다는 게 학계의 중론이다. 평소 가진 편견이 행동으로 이어진 게 차별이라는 얘기다. 편견 없이 상대방을 대할 수 있는 태도가 중요해지며, ‘반편견 교육’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반편견 교육은 아이들이 서로 차이를 존중하고 다양성을 수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취지다. 또 사회적 소수자 아동이 아닌 모든 아동이 받는 교육이라는 점이 특징이다.

    ◇누구나 사회적 소수자 될 수 있어⋯ ‘예방 차원’에서도 반편견 교육 필요

    전문가들은 반편견 교육으로 사회적 소수자 아동의 자존감을 높일 수 있다고 말한다. 전국에서 입양에 대한 반편견 교육을 진행 중인 전영란 한국입양홍보회 사회복지사는 “교육 받기 전에는 아이들이 ‘가짜 엄마’를 들먹이며 입양 아동에게 상처를 주기도 한다”며 “그러나 교육을 받고 나면 ‘입양도 가족이 되는 하나의 방법’ ‘지금 엄마가 진짜 엄마’라고 아이들의 인식이 달라지면서 차별하거나 상처주는 일이 줄고, 입양 아동의 생각이나 태도도 긍정적으로 바뀐다”고 말했다. 반편견 교육으로 친구들이 소수자 아동도 자신과 다름없다고 생각하자, 소수자 아동도 자신을 당당하게 드러낼 수 있다는 얘기다.

    누구나 사회적 소수자가 될 수 있기에 예방 차원에서도 반편견 교육은 중요하다. 한부모 가정 반편견 교육 강사로도 활동하는 황은숙 한국한부모가정사랑회장(아동복지학 박사)는 “한부모 가정은 현재 우리나라 전체 가구의 10.9%로, 상당한 비중을 차지한다”며 “모두가 한부모 가정이 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한부모 가정을 편견 없이 가정의 현실적인 양태로 받아들이는 게 중요합니다. 만약 아이가 편견을 가졌다면 한부모 가정이 됐을 때 충격을 받고 비행 행동을 할 가능성이 커요. 하지만 반편견 교육으로 한부모 가정에 대한 이해와 수용의 폭을 넓힌다면 이를 예방할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반편견 교육은 아이들이 차별에 능동적으로 대응할 힘을 키워준다. 정 사회복지사와 황 회장은 “반편견 교육을 받은 아이들은 편견을 방관하지 않고 ‘잘못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고 전했다. 이인재 서울교대 윤리교육과 교수는 “반편견 교육의 궁극적 목표는 편견을 인지하는 걸 넘어 남을 차별하지 않는 언행일치된 삶을 살게 하는 것”이라 강조했다. 추병완 춘천교대 윤리교육과 교수 또한 “나만 차별 없이 사는 게 아니라 사회 문제에 깊이 관심을 갖고 문제 해결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도록 하는 게 목적”이라 덧붙였다.

    전문가들은 이질적인 학생들이 서로 간에 긍정적 맥락의 유사성을 많이 찾게 하는 것이 반편견 교육의 핵심이라고 말한다. 추 교수는 “사람은 나와 같은 집단의 사람에게 잘 대해주고, 다른 집단의 사람을 배척하는 경향이 있다. 긍정적 유사성이 생기면 외집단의 사람도 나와 같은 부류의 사람으로 인식한다”고 말했다. 이러한 유사성을 찾으려면 서로 다른 배경을 가진 학생들이 접촉할 기회가 많아야 한다. 추 교수는 효과적인 교육법의 하나로 ‘협동학습’을 꼽았다. 그는 “협동학습을 통해 학생들은 자신과 다른 배경을 가진 친구와 직접 대면해 공동의 목표를 위해 함께 활동하면서 자연스럽게 편견을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편견이 고착되기 전 유아·초등 교육에서 주로 사용하는 방법으로는 ‘역 고정관념’ 활성화가 있다. 타워크레인 기사는 다수가 남성이지만, 교과서 삽화에서 묘사할 때는 여성으로 그리는 식이다. ‘롤 모델링’도 많이 활용된다. 편견과 달리 성취를 이룬 사회적 소수자의 모습을 보여주는 방법이다. 이를테면 아인슈타인과 에디슨도 ADHD였다는 점을 알려주는 식이다.

    ◇자구책에 머무는 반편견 교육⋯ 사회적 활성화 필요

    이러한 반편견 교육은 사회적 소수자 단체에서 자구책으로 시작한 경우가 많다. 정 사회복지사는 “한국입양홍보회의 반편견 교육은 지난 2003년 입양 부모들이 직접 교육안을 만들어 시작된 것”이라 말했다. 한부모 가정에 대한 반편견 교육도 마찬가지다. 황 회장은 “제가 이혼해 한부모 가정이 되면서 반편견 교육을 연구, 2002년 유아교육 프로그램을 만들었다”고 밝혔다. 한국입양홍보회는 지난해 1600회 규모로 교육을 진행했고, 한국한부모가정사랑회에서도 지금까지 1000여 명의 강사를 양성해 교육을 실시하며 반편견 교육에 노력을 기울여왔다.

    하지만 반편견 교육은 지속적으로 진행되지 못하는 경우가 대다수다. 대체로 사단법인이나 시민단체가 정부기관으로부터 사업비를 지원받아 운영하기 때문에 업무·사업 협약이 맺어지지 않으면 사업이 중단되곤 한다. 한국입양홍보회는 보건복지부의 사업으로 전국 규모의 교육을 꾸준히 진행 중이지만, 그 외의 반편견 교육은 일시적·산발적으로 이뤄져 왔다. 다문화 가정에 대한 반편견 교육을 진행했던 시민단체에서는 정부 부처와 MOU가 끝난 현재 사업을 중단하거나 자료집만을 제공하고 있다.

    우리나라 교육과정 내에도 ‘반편견 교육’이라는 용어는 없다. 평등, 상호존중, 배려 등의 핵심가치를 성교육, 인권교육, 인성교육, 세계시민교육 등으로 나눠 가르치고 있지만, 이조차도 ‘형식적’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이 교수는 “타인의 고통이나 불편함에 공감하는 태도는 도덕뿐 아니라 다양한 교과목을 통해 기를 수 있을 텐데도, 이런 교육은 항상 우선순위에서 밀린다”며 “입시 위주의 경쟁적인 교육 풍토가 자기중심적인 태도 형성에 한몫하지 않겠느냐”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반편견 교육이 주목받지 못해 아쉽다는 입장이다. 추 교수는 “최근 문화적 감수성이 중요해지면서 다문화 교육이 주목받고 있지만, 다문화 교육과 반편견 교육은 다르다”며 “반편견 교육을 다문화 교육에서 분리해 연구하는 이유는 ‘편견’에 초점을 맞출 필요가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황 회장도 “한 교육감과의 대담에서 반편견 교육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했는데, 교육감마저도 ‘반편견 교육은 처음 들어본다’고 할 정도로 이에 대한 관심이 부족한 실정”이라며 아쉬움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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