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 트레이너 박재연 “좋은 부모 되려면, ‘자기 내면’ 먼저 들여다봐야”
입력 2018.03.15 10:50
- ‘완벽한 부모’ 아니라는 점 인정해야 개선책 찾을 수 있어
- 사춘기 자녀에겐 잔소리보단 ‘침묵·스킨십’이 더 효과
  • 최근 ‘엄마의 말하기 연습’(한빛라이프)을 펴낸 박재연 리플러스 인간연구소장은 “자녀를 사랑하는 첫 단계는 부모가 자기 자신을 돌아보고 사랑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 김종연 기자
  • “많은 사람이 자신의 부모에게서 받은 상처를 가슴 깊은 곳에 묻어둔 채 거기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살아갑니다.”

    대화 트레이너인 박재연(40) 리플러스 인간연구소장은 어느 날 자녀 교육법 기사에 달린 댓글을 보고 깜짝 놀랐다. 댓글에 ‘나는 부모에게 맞고 컸지만, 그랬기 때문에 지금 잘됐다’고 적혀 있었기 때문이다. 박 소장은 “댓글을 단 사람에게 ‘당신이 부모에게 맞지 않았다면 더 잘됐을 것’이라고 말해주고 싶었다”며 “더 잘되진 않았더라도 그 사람이 최소한 더 행복하게 자랐을 것이라고 확신한다”고 말했다.

    박 소장에 따르면 양육 방식은 대(代)를 이어 영향을 미친다. 그는 “우리는 우리의 부모에게서, 그리고 그 부모는 그의 부모 세대에게서 거칠게 소통하는 법을 배워왔다”며 “생각보다 많은 부모가 자신의 부모에게 받은 상처를 고스란히 안은 채 그 방식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고 걱정했다. 어린 시절 경험한 부모의 양육방식, 자신이 자라온 가정환경을 당연한 것 또는, 옳은 것으로 여기며 무의식중에 따라 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박 소장은 “좋은 부모가 되려면 우선 자신이 부모로부터 받은 상처를 들여다보고 여기서 자유로워져야 한다”며 “자라면서 상처받은 경험이 있다면, 또는 감당할 수 없는 폭력에 놓인 적이 있다면 그 슬픔을 꺼내 애도하고 상처를 치유해야 한다”고 말했다.

    ◇아이와 잘 소통하려면… “자신부터 사랑하는 부모 돼야”

    박 소장이 많은 부모에게 이런 얘기를 하는 것은 자신의 경험 때문이다. 스물넷의 이른 나이에 아들을 낳은 그는 ‘정서적으로 안정된 엄마’, ‘이상적인 좋은 엄마’가 되고 싶었다. 실제로 아이를 키우는 동안 항상 자신은 완벽한 엄마이며, 화를 낼 때와 그렇지 않을 때를 구분하는 엄마라고 믿었다. 자신이 대화법을 연구하고 가르치는 사람이기에 더욱 그랬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여섯 살인 아들이 숙제(학습지)를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불같이 화를 냈다. 그리고 그날 늦게 아들이 적어놓은 메모를 보고 소름이 돋을 만큼 놀랐다. 메모에는 ‘엄마가 너무 무섭다’고 적혀 있었다. ‘좋은 엄마’라는 믿음이 깨진 순간이었다.

    박 소장은 이를 계기로 자신을 돌아보게 됐다. ‘어떻게 하면 아이와 잘 대화할 수 있는지’를 고민하면서 일어난 변화다. 책을 읽고 소통에 대해 공부하며 여러 가지 방안을 찾던 중 그가 찾아낸 진실은 ‘아이와 잘 소통하려면 부모가 자신을 사랑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돌이켜 보니 그 역시 어린 시절 부모와 자주 대화 나누는 민주적이고 따뜻한 환경에서 자라지 못했다. 제대로 대화하는 방식을 부모로부터 배운 적이 없었다. “일찍부터 아버지와 어머니가 따로 떨어져 지냈기 때문에 엄마와는 대화할 시간이 부족했어요. 어쩌다 한 번 엄마와 만나면 일상에서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하기 어려웠습니다. 아버지로부터는 잦은 폭력을 당했고, 새어머니와는 관계가 어색했어요. 그래서 부모님과 대화하기보다는 혼자서 하고 싶은 말을 적곤 했죠. 그러다 부모님께 왜 쓸데없는 것을 적느냐며 혼나기도 했고요.”

    박 소장은 먼저 자신이 ‘최고의 엄마’가 아니라는 점을 인정했다. 그는 “제가 ‘정서적·심리적으로 약하고 감정조절을 잘 못하는 엄마’라는 점을 받아들였다”며 “그 사실을 인정하고 나니 변명하거나 합리화하기보다는 ‘어떻게 하면 좋은 엄마로 성장할 수 있을지’ 방법을 찾아보는 태도를 보이게 됐다”고 했다. “(아이에게 어떤 문제가 있을 때) 대부분 부모는 아이를 변화시키려 하는데, 이런 태도를 버려야 합니다. 아이를 꺾으려고 하지 마세요. 아이와 부모 사이에서 생기는 문제의 원인은 모두 ‘부모’에게 있다는 점을 인지하고, 먼저 자신을 바꾸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이후 박 소장은 아이의 문제점만 바라보기보다는 자신의 감정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매일 밤 자신의 감정을 들여다보고, 아이로부터 얻은 행복에 집중했다. 그리고 아이에게 ‘네가 있어서 행복해’, ‘고마워’라고 솔직하게 말했다. 아이가 잘못한 일이나 문제점이 눈에 보이긴 했지만, 아이 덕분에 행복했던 기억이 머릿속에서 더 커짐으로써 이를 평화롭게 해결할 수 있었다. 그러자 아이의 태도도 변했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떼쓰고 억지 부리던 모습이 조금씩 사라지고, 자기감정을 솔직하게 말하기도 했다. “하루는 아이와 손을 잡고 걸으며 ‘너와 손잡고 걸으니 엄마는 행복해’라고 말했어요. 그러자 아이가 ‘엄마와 함께 손을 잡고 걸으니 나도 행복해’라고 말하더군요. 그때 참 기뻤어요.”

    그는 “부모가 달라지려면 지금의 잘못을 직시하고 멈추는 법을 알아야 한다”며 “‘나는 저 정도는 아니야(나는 저렇게 나쁜 부모는 아니야)’라고 합리화하면 새로운 방식을 찾기 어렵다”고 강조했다. “부모가 먼저 자신이 부족하다는 점을 인정해야 해요. 그리고 자신을 사랑할 줄도 알아야 합니다. 그게 자녀를 사랑하는 첫 단계예요. 아이에게 부모는 세상의 전부이며 세상을 보는 창(窓)이에요. 부모와의 관계, 부모와 겪는 경험을 통해 아이의 성격이 형성되죠. 아이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주려면, 부모가 먼저 행복해야 한다는 점을 명심하세요.”

  • 박재연 대화 트레이너 / 김종연 기자
  • ◇완벽한 부모는 없다… ‘노력’하는 모습으로도 충분

    사춘기 자녀를 둔 부모 대부분은 ‘게임’ 때문에 자녀와 실랑이를 벌인다. 박 소장도 마찬가지였다. 고교생이 된 아들이 집에서 게임만 하는 통에 고민이 이만저만 아니었다. 아들에게 어떤 말을 할까 고민하던 그가 선택한 건 뜻밖에도 ‘침묵’이었다. 말수를 줄이는 대신 스킨십을 늘렸다. “게임 하는 아이에게 ‘게임 그만해!’ ‘숙제는 했어?’라고 잔소리하는 대신 조용히 뒤에 가서 안아주고 정수리에 뽀뽀했어요. 그 뒤 제 방에서 일하고 있는데 아이가 컴퓨터를 끄고 제게 와서는 ‘엄마 밥 먹었어?’라고 먼저 말을 걸더군요. 침묵과 스킨십이 아이에게 그 어떤 말보다 큰 효력을 발휘한 것이죠.”

    박 소장은 “아이와 스킨십이 적은 가정이라면 이를 낯 간지럽다고 포기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아이에게 다가가기 쉽지 않더라도 포기하지 말고 최선을 다하라는 것이다. “퇴학당한 아이들이 모인 곳에서 강연하다가 ‘요즘 아들이 내 손을 뿌리치는데 어떻게 하면 좋을까’라고 고민을 털어놓은 적이 있어요. 그러자 한 아이가 ‘거기서 포기하지 마세요. 그러면 아들이 저처럼 되고 말 거예요’라고 하더라고요. 그 말을 듣고 강연 중임에도 눈물을 펑펑 쏟았어요.”

    마지막으로 그는 “노력하는 모습만으로도 충분하다”며 세상의 모든 부모를 격려했다. “어색하더라도 자녀를 많이 안아주세요. 얼굴을 마주 보고 스킨십하는 게 어렵다면 휴대전화 메시지나 메신저로 사랑을 표현하는 것부터 시작해 보세요. 자녀와의 대화 단절 문제는 극복할 대상이지, 결코 포기할 문제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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