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의는 집에서, 과제는 교실서… “거꾸로 교실, 한국 교육 패러다임 바꿀 단초될 것”
입력 2016.10.27 13:05
  • 정찬필 미래교실네트워크 사무총장/임영근 영상미디어 기자
  •  [한국 교육의 미래를 말하다] 정찬필 미래교실네트워크 사무총장

    한 사내가 한국 교실을 뒤집었다. 척박하고 희망 없던 공간을 활기와 열정이 가득한 곳으로 확 바꿔놨다. ‘마법’을 경험한 교사들이 말했다. “‘무덤’ 같던 교실이 이젠 ‘놀이공원’이 됐어요.”

    ‘도깨비 방망이’를 가져와 휘두른 남자는 정찬필(48) 미래교실네트워크 사무총장. 교실을 시끌벅적 놀이터로 만드는 특별한 수업, 이른바 ‘거꾸로 교실’을 국내에 처음으로 도입한 인물이다. 지난 25일 오후 서울 광화문 아쇼카한국 사무소에서 만난 정 사무총장은 “‘거꾸로 교실’이 앞으로 한국 교육의 패러다임을 바꿀 단초가 될 것”이라고 했다.

    ◇교실의 주인은 교사 아닌 학생

    거꾸로 교실의 개념은 간단하다. 학생들이 교사가 만든 강의 동영상을 미리 보고, 이를 통해 쌓은 지식을 토대로 수업 시간에 토론·협업 등 다양한 활동을 주도적으로 하는 수업 방식이다. 플립드 러닝(flipped learning)으로도 불린다. 정 사무총장은 “그동안 교사들이 꽉 쥐고 있던 교실 주권을 진짜 주인인 학생들에게 돌려주는 것이기도 하다”고 했다.

    뿌리는 미국이다. 2006년 미국 콜로라도주(州)의 한 고교 화학 교사였던 존 버그만 등이 고안했다. 교실 붕괴를 막기 위한 수업 개선의 한 방법이었다. 효과는 탁월했다. 유의미한 변화를 만들면서, 미국 내에서 점점 반향을 일으켰다.

    정 사무총장은 2013년 거꾸로 교실을 만났다. “KBS에서 다큐멘터리 PD로 재직하던 당시, 애플이 주관한 교육 콘퍼런스에 참가하게 됐어요. 21세기 교육의 글로벌 위기 상황과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한 주제였는데, 교육 문제가 세계적으로 정말 심각하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그때부터 교육 혁신을 위한 큰 그림이 필요하다는 것을 인식하게 됐고, 이러한 메시지를 담은 프로그램을 제작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몇달 후 취재를 위해 미국 샌안토니오에서 열린 한 교육 콘퍼런스를 찾았는데, 그곳에서 교육 혁신의 첫 단추가 될 만한 것을 발견했어요. 그게 바로 플립드 러닝이었어요.”

    ◇퀭하던 학생들 눈 ‘반짝’… 덩달아 성적도 ‘쑥쑥’

    그해 곧바로 다큐멘터리 제작에 돌입했다. 미국 내 관련 수업 고수들과의 취재를 통해 익힌 ‘플립드 러닝의 A to Z’를 국내 상황에 맞게 다듬어 부산의 두 학교에 적용했다. 실험 결과는 놀라웠다. 그동안 수업 시간 내내 퀭하던 학생들의 눈이 어느새 반짝이기 시작했다. 정 사무총장은 “실험 도중 학부모들과 대화를 나눌 기회가 있었는데, 한 학부모는 아이가 일요일 저녁에 학교 가고 싶다고 말해서 깜짝 놀랐다고 하더라”고 했다.

    성적도 뒤따랐다. 당시 부산 동평중 3학년 국어 성적의 경우엔 절반 이상이 거꾸로 교실 실행 이전보다 20점 이상 껑충 뛰었다. 정 사무총장은 “수업이 재밌으니, 성적도 미끼처럼 따라온 것”이라고 했다.

    이듬해 전파를 탄 다큐멘터리는 ‘대박’을 쳤다. 방영 5개월 만에 교사들을 위한 오프라인 거꾸로 교실 연수 프로그램이 마련됐고, 해마다 참가하는 교사가 평균 3000명씩 늘었다. 현재까지 약 1만5000여 곳의 교실 수업이 뒤집혔다. “첫 실험에 참여한 교사들이 ‘설마 이게 되겠느냐’고 생각했대요. 미국에서 효과를 본 수업 방식이어도, 한국 학생들이 미국 학생들보다 자발성이 떨어진다고 생각한 거죠. 하지만 변화는 실제로 일어났어요. 교사들이 그 변화를 목격하고, 학생들은 경험했죠. 학부모들도 확인했어요. 짧은 시간 내에 전국으로 확산할 수 있었던 건 바로 그 때문이에요.”

    ◇“거꾸로 교실, 바뀐 입시 지형에 최적화”

    그래도 거꾸로 교실을 향한 의심은 여전히 있다. 현재 우리나라 입시 구조상, 특히 고교 현장에선 확산하기 어렵다는 게 대표적이다. 현재 대입(大入)에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게 내신과 수능이기 때문에 수업은 교사의 지식 전달과 문제 풀이 중심이 돼야 한다는 것이다.

    정 사무총장은 이에 대해 고개를 저었다. “이미 입시 지형이 바뀌었어요. 대입 수시 비율은 70%에 가깝고, 정시는 30%로 쪼그라들었죠. 정시는 이제 재수생을 위한 전형이나 다름없어요. 재학생들은 수시에 집중하는 구조가 마련됐고요. 대학은 수시전형에서 학생들의 수업 태도와 교내 활동을 중점적으로 봐요. 학생들의 적극성을 돋보이게 하는 거꾸로 교실이 기존의 일방적 강의로 이뤄진 수업 방식보다 더 효과적인 셈이죠. 실제로 고3 교실에서 이를 진행한 울산 화암고는 전년도 대입에서 아주 유의미한 성과도 거뒀고요. 이러한 사례는 점점 쌓이고 있어요.”

    ◇21세기 학교 교육 목표는 세상에 대응하는 문제 해결 능력

    정 사무총장이 거꾸로 교실에 주목한 궁극적인 이유는 따로 있다. “버그만 교사가 플립드 러닝을 고안한 건 수업 개선을 위해서였어요. 교실 붕괴를 막는 게 주된 목적이었죠. 저는 좀 달랐어요. 좀 더 큰 그림을 그렸죠. 변화무쌍한 21세기 정보산업시대에 대비하기 위해선 학교 교육이 ‘세상에 대응하는 문제 해결 능력’을 키워줘야 한다고 판단했어요. 그러기 위해선 현재 학생들의 수동적인 ‘학습 DNA’를 바꾸는 게 선행돼야 했고, 이를 바꾸는 데 아주 적합한 도구로 거꾸로 교실을 선택한 거예요. 다행히 거꾸로 교실이 확산하면서 학생들의 학습 DNA가 점점 능동적으로 변화하고 있어요.”

    그는 21세기 학교 교육 방법론을 실현하기 위한 2단계도 진행하고 있다. 거꾸로 교실에 이은 새 프로젝트인 ‘사상 최대 수업 프로젝트’다. 정 사무총장은 “쉽게 말해 교실 안에서 배운 것을 교실 바깥세상에 실제 도움이 될 만한 것으로 실현하는 개념”이라며 “거꾸로 교실을 통해 문제 해결 방법을 터득했다면, 실제 프로젝트를 통해 좀 더 효율적인 방법으로 해결해보자는 취지”라고 했다.

    정 사무총장은 올해 KBS에 사직서를 냈다. 두 프로젝트 확산에 좀 더 집중하기 위해서다. 그는 “다행히 먹고 살 걱정은 덜었으니…”라며 웃었다. 그는 올해 아쇼카 펠로(국제 비영리단체 아쇼카가 선정한 주목할만한 사회적 혁신가)로 선정돼 3년간 조건 없이 생활비를 지원받는다.

    “그래도 (사표 낸 건) 후회할 거예요. 워낙 좋은 직장이었으니까요. 하지만 두 프로젝트에 전념하지 않는다면 더 큰 후회를 할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내가 살아 있는 동안 가장 착한 일을 할 수 있겠다고도 느꼈죠. 이미 방송을 통해서 거꾸로 교실 효과 검증은 끝냈다고 봐요. 이젠 두 프로젝트의 효과를 현장에 직접 전파하는 게 더 강력하고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한 가지 더, 거꾸로 교실 수업 현장은 언제나 열려 있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어요. 교실 변화 사례가 궁금하다면 반드시 미래교실네트워크로 문의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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