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계·제작하며 창의력 쑥쑥… '메이커 교육'이 뜬다
김세영 조선에듀 기자
기사입력 2017.12.11 03:03

4차 산업혁명 시대 맞춤 교육 … 내년 서울 초·중·고교에 본격 도입 … 공교육서 제대로 실현될까 우려도

  • "블루 칼라(blue collar·생산직)도 화이트 칼라(white collar·사무직)도 아닌, '새로운 칼라(new collar)'가 세상을 지배할 것이다."

    버지니아 로메티 IBM 회장의 말처럼 앞으로는 지금까지와 다른 역량을 지닌 이들이 산업을 이끌 전망이다. 기술 발달로 빠르게 변하는 세상에서 사람들은 매일 처음 접하는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전문가들은 "불확실한 미래에 대처할 수 있는 창의력을 갖춘 집단이 새로운 칼라가 될 것"이라며 "이 같은 능력을 발달시키기 위해 메이커(maker·창작자) 교육을 도입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필요한 물건 직접 설계·제작… 창의력 키워

    메이커 교육은 사용자가 필요한 것을 직접 설계해 제작하는 과정을 경험하도록 하는 데 중점을 둔다. 얼핏 기존 DIY(Do It Yourself) 교육과 비슷해 보이지만, 그렇지 않다. DIY 교육이 단순히 자기에게 필요한 물품 만드는 법을 가르친다면, 메이커 교육은 여기에 사회 시스템을 수정하고 발전시키는 상위 개념을 포함한다. 2006년 '스스로 만든 물건을 사람들과 공유하자'며 시작된 미국 메이커 운동에서 파생했다. IoT(사물인터넷)·3D 프린터 등 신기술이 폭발적으로 발달하면서 현재 메이커 교육은 주로 소프트웨어(SW) 교육과 접목하는 양상을 띤다. 예컨대 이런 수업이다. 어떤 상황을 제시하고 여기서 발생할 수 있는 다양한 문제를 찾도록 한다. 그런 다음 아두이노 등 무료 코딩 프로그램을 활용해 해결 방안을 구상하고 직접 그것을 제작하는 전 과정을 익힌다. 물품을 제작할 땐 3D 프린터를 자주 활용한다.

    수업을 이끄는 이는 학생이며, 교사는 이들을 독려하고 함께 고민하며 해결책에 다가갈 수 있도록 돕는 조력자다. 이 과정에서 학생들이 키울 수 있는 대표적인 역량은 창의력과 자신감이다. 갖고 싶은 물건을 제작하거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아이디어를 떠올리는 과정이 창의력을 향상시킨다. 이지선 숙명여대 시각영상디자인학과 교수는 "스스로 내놓은 아이디어로 무언가를 자기주도적으로 만들고 칭찬받는 경험을 거치며 자신감을 얻는다"며 "이 자신감은 다음 번에 아이디어를 이끌어내는 창의력의 근원이 된다"고 했다. 실수를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태도도 익힐 수 있다.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은 실패의 연속이며, 결과물이 제대로 나오지 않는 경우도 다반사이기 때문이다.

    일부 학교에선 이미 메이커 교육을 실시 중이다. 서울 영등포고는 지난 3년간 기술 교과에 메이커 교육을 접목해 수업과 수행평가를 했다. 팀별로 미디어 아트 작품을 만들거나 개인 프로젝트로 실생활의 크고 작은 문제를 해결해보는 식이다. 학생들은 '엄마가 내 방에 다가오는 걸 미리 알려주는 기기' '멀리서 누르면 창문을 닫아주는 버튼' '보는 방향에 따라 표정이 달라지는 흉상' 등을 만들었다고 한다. 운동이 부족한 특수학교 학생들을 위해 '밟으면 소리 나는 피아노 계단'을 만들어 설치해주기도 했다. 김주현 기술 교사는 "자기가 배운 것을 활용해 주변 상황을 바꾸거나 사회적 공헌을 할 수 있다는 점을 학생들이 깨달은 것 같다"고 말했다. 3년간 학교에서 메이커 수업을 받은 이건모(서울 영등포고 3)군은 "예전 같으면 무심하게 지나쳤을 주변 문제를 '내가 개선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하는 태도로 대하게 됐다는 점이 큰 변화"라고 말했다.

    미래산업과학고(서울 노원)는 전교생을 대상으로 메이커 교육을 한다. 평범한 공업고였던 이 학교는 2010년 발명 특허 중심 특성화고로 지정되면서 메이커 교육을 도입했다. 무엇을 만들지 아이디어를 내고 제품을 실제로 제작하며 특허 등록까지 경험해본다. 심원보 교사는 "메이커 교육을 하기 전엔 학생들이 다소 수동적으로 학습하는 면이 있었는데, 지금은 놀라울 만큼 능동적인 태도로 바뀌었다"고 했다. 신민경(미래산업과학고 1)양은 "예전에는 아이디어를 떠올리기만 했는데, 메이커 교육을 받은 뒤로는 어떻게 아이디어를 현실에 맞게 구현할 것인지 구체적으로 생각하게 됐다"고 말했다. 정여진(미래산업과학고 1)양은 "팀 프로젝트를 할 때 서로 부족한 점을 메워가며 밤새 결과물을 도출하는 과정에서 협업력을 키을 수 있었다"며 "매일 조금씩 발전하는 기분이 들어 뿌듯하고 학교 가는 길이 즐겁다"고 말했다.

  • 미래산업과학고 학생들이 그동안 메이커 교육으로 만든 3D 휴대폰 거치대·내용물을 남김 없이 바를 수 있는 립스틱 용기 등을 손에 들고 있다.
    ▲ 미래산업과학고 학생들이 그동안 메이커 교육으로 만든 3D 휴대폰 거치대·내용물을 남김 없이 바를 수 있는 립스틱 용기 등을 손에 들고 있다./ 최항석 객원기자
    ◇교사 연수·평가 등 과제 남아

    서울시교육청은 내년부터 초·중·고교에서 본격적으로 메이커 교육을 시작한다. 4차 산업혁명 시대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내년부터 교과과정과 연계한 '서울형 메이커 교육'을 추진하겠다고 최근 발표했다. 2018년부터 2022년까지 100억원을 들여 메이커 교육 인프라를 조성하고 관련 교사를 양성한다.

    전문가들은 공교육에 메이커 교육을 들여온 결정을 환영하면서도 제대로 된 교육이 진행될지에 대해선 우려하는 분위기다. 강의식 수업에 익숙한 교사들이 단기간 연수만 받고 조력자 역할에 잘 적응할 것인가에 대한 걱정이 나온다. 이지선 교수는 "메이커 교육은 실수와 실패를 동반하는 학습법이라 자칫 학생들이 좌절하기 쉽다"며 "이때 교사가 어떻게 아이들을 독려하고 이끄는지가 무척 중요하다"고 말했다. 메이커 교육의 성패는 환경이나 도구가 아니라 교사와 교육 내용이 결정한다. 따로 공간을 마련할 필요 없이 기존 컴퓨터실만 있어도 메이커 교육이 가능하며, 교육과정에 따라선 컴퓨터 없이 하드보드, 가위 같은 공작 도구와 재료만 있어도 충분하다는 게 전문가들 얘기다.

    모든 학생이 일률적인 메이커 교육을 받지 않도록 세심한 커리큘럼을 만들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김주현 교사는 "흥미를 갖는 프로그램이 저마다 다르므로 원하는 방향에 집중한 맞춤형 교육을 제공해야 효과적"이라고 말했다. 이를 위해선 교사가 메이커 교육에 활용되는 수많은 프로그램을 꿰고 있어야 한다. 그밖에 입시 위주로 돌아가는 학교에서 메이커 교육을 얼마나 활용할 수 있느냐 하는 회의도 있다. 과정과 결과를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하는 문제도 풀어야 한다.

    창업과 연결한 일부 메이커 교육 흐름에 대한 걱정도 나온다. 한계 없는 상상력을 키워야 할 학생들에게 시장에서 팔릴 만한 물건을 만들도록 하는 교육은 적절치 않다는 것이다. 메이커 교육 전문 기업 브레이너리의 정종욱 대표는 "인간 본연의 호기심을 살리는 방향을 우선해야 한다"며 "상업성은 그 이후에 논해야 할 문제"라고 지적했다.